대만의 유명작가 보양은 농담삼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집은 미국 집에서 살고 차는 독일 차를 타고 아내는 일본 여자와 결혼해 사는 것이 가장 좋다"

그렇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한 일본여성을 생각할 때 남편을 하늘처럼 떠받들며 내조하는 현모양처의 이미지로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황혼이혼'이 일본의 사회문제로 떠올랐는데 자녀의 출가나 남편의 정년퇴직 후 주로 아내의 요구에 의해 부부가 갈라서는 노년기 이혼이 그것이다. 자식들을 위해 살 필요도 없어지고 남편의 퇴직금중 일부를 위자료로 받을 수 있으니 새출발을 위한 경제적 여건이 마련돼 잘못된 결혼생활을 참고 지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늦었지만, 남은 인생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살고 싶은 것이다. 결혼으로 인해 잃어버렸던 것들을 보상하듯 제 2의 청춘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 59살의 평범한 중년여인 도시코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 2의 인생전환점이 찾아온다. 바로 심장마비로 급사한 남편의 죽음 때문. 남편의 급작스런 죽음도 당황스러운데 집과 유산을 노리는 자식들, 그리고 무엇보다 충격적인 남편의 비밀...

도시코는 신기했다. 자기 배 아파 낳아 기른 사랑스럽기 그지없던 아이들의 마음이 어느 새엔가 나에게서 멀어진 것 같다고 느낀 지는 꽤 되었다. 가사와 육아에 전념해 온 나의 시간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좋은 어머니였을 내가 성장한 자식들에게 점차 버림받아 간다. 남편도 정숙한 아내인 나를 배신했더랬다. 앞으로는 어머니도 아내도 아닌 시간을 혼자서 오래도록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제 도시코는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 아직 혼자서 살 단단한 마음도 결심도 서지 않았는데 자식들은 재산분배로 압박하고 오래된 남편의 배신은 그녀의 마음을 흔들고 할퀸다. 그래서 그녀는 가출도 하고 자식들과 다투기고, 남편의 오랜 내연녀를 만나고, 다른 남자와 하룻밤의 정사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렇게 도시코는 방황했고, 고민했고, 슬펐고, 화가 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한 자아를 찾아갔고 오히려 홀가분해지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다카유키가 죽지 않았더라면 친구들과 이만큼 친해지지도 못했을 거고, 이마이나 쓰카모토라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메밀국수 모임에 참가하는 일도, 쓰카모토와 하룻밤의 정사를 벌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잃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것도 있다. 잃어버리는 것이 크면 클수록 더 악착스럽게 얻으려고 해야 하는 것일까. 앞으로는 지금까지 한적 없는 경험을 많이 하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탐욕스러운 바람을 차마 못 따라가겠다고 몸이 지레 겁을 먹은 것처럼.

우리네 부모님들이 그렇고, 나 역시 그렇듯이 죽음은 피할 수 없고 결국 혼자서 살 수밖에 없는 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도시코가 혼자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앞으로 나아갔듯이 나이 들어 혼자가 되더라도 다시 훌훌 털고 멋지게, 나 자신과 세상에 맞설 수 있는 강한 자아를 지녔으면 좋겠다. '다마모에', 혼이여 활활 타올라라!

역시 기리노 나쓰오는 결코 실망을 시키지 않는 작가였다.

그녀의 하드보일드 풍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이 작품 역시 진지한 인간탐구의 깊이가 있고 나름의 흥미로운 스릴감이 있어 좋았다. 주인공 나오코 외에도 그녀의 동창생들, 메밀국수 모임의 할아버지들, 캡술호텔의 노파와 매니저 노다의 캐릭터들도 무척이나 인상적이고 재미있다. 꼭 추천하고픈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