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만 말아- 흔글 지음

*그런 너
뛰어나지는 않지만 무난한 사람
얼어붙은 마음도 녹이는 사람
얹힌 속을 소화시켜주는 사람
그러고 보면 꽤 괜찮은 사람

*시들지만 말아라
쓰러져도 괜찮아.
무너지지만 말아.

넘어지면 어때?
일어날 일만 남았는데.

눈부시게 빛나지 않아도 괜찮아.
시들지만 말아라.

*세상
내가 잠에 취해 뒤척이고 있을 때에도
세상은 언제나 깨어 있었다.
음료를 사러 갈 때도
누군가는 일을 하고 있었으며
내가 아무리 첫차를 타고 간다 한들
누군가는 그 지하철을 운전하고 있었다.
나는 항상 이 정도면 된다고 위안하곤 했지만
아마도 나는 아직 절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절실한 척 노력을 포장하기 바쁘기만 했지.

*살아가면서
살아가면서 해나가야 하는 것들이
모두 다 행복을 주지는 않겠지만
우리 그냥 행복하다고 생각하기로 해요

삶에 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을 쳐 나가며 더 나아가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신호등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는데
오늘 달이 참 예쁘길래
사진 찍어 보내주려고
초록불을 두 번이나 보냈어요.

사랑도 이런 거겠죠.
세상은 건너가라 하는데

나는 가만히 멈춰 서게 되는 것처럼
가장 예쁜 마음을 보여주려는 거죠.

*모든 남자들에게
오늘 여자 친구가 행복하길 바란다면
사소한 꽃 한 송이 준비하세요
전혀 사소하지 않을 만큼 좋아해줄 거예요.
졸업식 이후로 꽃 못 받았을 수도 있는데
충분히 줄 수 있잖아요.
큰 것도 아니고.

*희망
사는 게 참 힘들죠.
세상은 감당히기 힘들고
불행만 가득한 것 같죠.
그대는 잠시 어둠일 뿐이고
희망은 가려져 있을 뿐이에요.
구름에 가려진 저 태양도
걷히면 엄청난 밝음이에요.
조금만 지나가면
그대도 밝은 날 올 거예요.
불행은 아주 잠시
희망은 꾸준할 거예요.
단단해져요, 우리.

*부모님에게
태어나자마자 따뜻한 옷 한 벌, 몸에 좋은 이유식.
많은 축복과 환영 속에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들으며
좋은 것만 먹고 자란 나의 어린 시절.
그와 반대로 춥고 힘들던 날에 태어나 북적이는 가족 속에서
부족한 밥을 나눠 먹으며 배고픔을
당연히 여기고 자랐던 모두의 부모님들.
나는 절대 부모님보다 대단하게 사랑해줄 자신이 없다.
그만큼의 끈기도 없고 내 헌신은 부그러울 만큼 적다.
또 나를 안아주기만을 바라고 나를 위해주기만을 바랐던
어린 나릐 나, 뒤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사랑으로 가득했고
부모님을 위한 효도는 얼마나 부족했던지.

*아버지
아버지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커다란 산처럼 멀찍이 보면 괜찮아 보이지만
가까이 보면 온갖 상한 나무들로 가득했다.
항상 모든 짐을 짊어지면서도 딱딱한 손을 숨기는 것처럼.

 

2017년 9월 17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