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무 아래 사흘을 머물지 않는다-현몽스님

 

p5 ; 2008년 현재 대한민국에 출간되어 있는 금강경은 무려 132종에 달하는데 거의가 어려운 한문과 불교용어로 뒤범벅인지라 독자들은 눈을 별반 끌지 못한다. 다행히도 이놈은 미리 자수했듯이 원채 불학무식한데다 막되어 먹다 보니 고상하고 어려운 것 이해하지 못해 쉽게 웃기게 옮길 수 밖에 없었다.

 

p19 ; 세존은 마음만을 논한다.금강경을 한 글자로 줄인다면 아마 마음 心이 될 것이다. 팔만 대장경을 축소해도 마찬가지다... 절대 마음은 절대진리여서 거기엔 이미 어떤 놀라움도 의문도 남지 않는다. 그 절대에 녹아들었음에 세존께선 살아생전 종교적일만큼 경건한 바른 생활자일 수 있었을진 몰라도 종교를 탐닉한 종교쟁이는 아니었다.... 진정한 수행자는 온몸으로 몸부림친다. 이유는 없다. 그저 몸부림치는 게 이유다.

 

p22 ; 부처는 가명으로나마 자신의 우월함을 선전하지 않는다. 그딴 선전이야 골빈 종교가나 썩어터진 정치가들의 전유물이다. 깨달음까지 성가시다고 패대기친 청빈의 여래에게 새삼 무슨 놈의 표어나 포스터가 필요하겠는가. 그대는 물론 모든 종교를 선택할 자유를 가졌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지 못한 채 선택하는 종교가 과연 경이로울 수 있을까. 언젠가 나는 성불하고 말 것이라고 이빨을 사려 문다면 그것 역시 불교적 광고제작에 지나지 않는다. 텅 빈 단순함은 언제나 경시되어 왔고 언제나 한 차원 아래의 모자람으로 치부되어 온 게 그간의 우리네 정신문화였다. 텅 비어 단순하면 거기가 부처의 숨결이자 나의 숨결이거늘 어색하게 무엇을 따로 선전하려 드는가?

 

p30 ; 우리가 인생이 고독해 못살겠다고 한숨짓는 건 고독으로부터 우선 달아나고 싶어서다. 차라리 완전한 혼자가 되어 고독을 거부하지 말라. 고독은 당신의 일부다. 그것은 업보도 아니고 신의 뜻도 아니다. 그리고 끝내 고독하지 않으려면 언제나 새롭게 죽으며, 죽음으로 영생을 종식시키는 연습에 몰두하라.

 

p36 ; 당신이 베풀고자 한다면 베푸는 즉시 당신은 그림자마저 사라져야 한다. 사라지지 못해 당신이 선명히 부각된다면 당신의 보시는 거짓이고 당신은 희대의 사기꾼임에 틀림없다. 베푸는 자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보시란 신앙이나 윤리보다 앞선다는 걸! 이 간단한 진리가 왜 등한시되고 있는가. 당신은 베푸는 척 다른 사람과 경쟁하고 베푸는 척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푸는 자는 한 번 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보시란 축복의 또 다른 단어임을! 보시란 후회없는 해피엔딩임을 !

 

p49 ; 인도의 뿌나란 도시엔 명상 전문대학이 있고, 한국의 대찰마단 선방이란 게 우후죽순 설치고, 개신교에선 우람찬 기도원을 운영해 팔짝팔짝 뛰며 기도하게끔 들볶는다. 나를 거두어 주소서가 공통된 슬로건이다. 대관절 무엇을 거두어 달라는 것인가?

 

p54; 부귀를 구하니 가난이 싹트고, 천사를 청하니 악마가 날뛰고, 더 이상 구하지 않으니 천당이 솟아나더라, 그대, 천당에서조차 종교를 섬기려는가?

 

p65 ; 고통 앞질러 한참이나 더 비극적인 게 있다면 그건 볼 것 없이 스스로 잘났다고 안하무인하는 광신자들의 인생일 것이다.-알베르 까뮈

 

p79 ; 한국 불교에서는 마음 비우는 지름길로 참선을 적극 추천한다. 그러나 말이다. ' 불교가 무엇입니까? 삼베 서근' ' 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판때기 이빨의 털' ' 부처의 정체는? 마른 똥막대기'  매사 이 지경으로 귀신 씻나락 까기 바쁘니 우매한 중생들에게 참선은 신선한 충격이 아니라 난해한 박사학위 논문으로 비친다.

 

p81; 옛날 중국에선 10년간 토굴 참선을 무사히 마친 스님들에게 마지막 날 아리따운 아가씰 합방시켜 경계를 시험했더란다. 만에 하나 스님의 반응이 소가 닭 보듯 무덤덤하다면 재깍 토굴에 불을 싸질렀단다. 그럴싸한 시험 방식이다. 그래, 여자를 여자로 보지 못하고 술을 술로 보지 못할진대 그딴건 참선도 불교도 아닌 개눈깔이다...하지만 슬프고 슬프다. 그렇게 확신하여 죽기 살기 악을 써도 우리네 인생사 중심축엔 아상 외에 또 다른 함정이 도사려 부단하게 우릴 좌절시킨다. 소위 피부암마냥 덕지덕지 달라붇은 후천적 세 가지 풍토병이 요인이다. '1. 천상으로부터 오는 천상병; 신들의 부단한 장난질이다. 2. 종교로부터 오는 종교병; 맹신을 강요하는 협박이다. 3. 철학으로부터 오는 철학병; 약장수 식의 감언이설이다.' 사람이 환장하면 허깨비가 어른거리기 십상이다. 안 그래도 아상에 절어 갈팡질팡인 중생들한테 상단의 세 가질 보탠다면 결과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뻔하다.

 

p94; 술꾼이 복 짓겠다고 억지로 술을 끊든지 골초가 복 짓겠다고 억지로 담배 끊으면 남는 건 목숨 끊을 일뿐이라.

 

p100 ; 마음만 비우면 제대로 드러난다. 그 천로역정을 육보시 통해 몸소 풀어 쓴 사람이 경허스님으로 그야말로 무서운 영혼의 혁명가였다. 평상인의 시각에선 광인이었으나 평상인들이 썩어터진 뺑뺑이 참선이나 절 팔아 절 짓는 돈벌이에 제 정신 아닐 때 광인만이 순수의 세계에 우두커니 외롭게 서 있었던 것이다. 광인에겐 친구가 없다.... 술 취하면 주절거렸단다. " 그냥 그쯤으로 살라고 졸리면 자고 목마르면 물 마시라고, 암 것도 아닌 듯한 이런 일상이 그야말로 값진 인생이라고." Hello, 경허스님!

 

p114; 길섶에 널브러진 잡초 한 포기에도 무한한 우주가 담겨 잇음을 나는 안다. 인생이 무엇이냐고 묻는 대신 어떤 것을 인생이라 하느냐고 물어달라. 나는 삶을 통해 많은 걸 터득했으므로 이젠 죽음을 통해 삶에서 맛보지 못한 싱그러운 무엇인갈 체험하려 한다. 두려울 것 없다. 인생이란 삶에 갇히면 망상이요, 아니 갇히면 어리석음일 테니까. Socrates

 

p117 ; 그대들은 혹여 섹스 후의 슬픔을 기억하는가? 섹스 후에 인간은 슬프다. 스릴 만점인 광란의 절정에서 맥없이 무너져 일정시간 멍한 지체 장애자가 되기 때문이다.

 

p122; 보지 않기 위해 보는것이다. 듣지 않기 위해 듣는 것이다. 쓰러진 땅을 짚지 않고는 일어설 수 없듯이다.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거늘 부처님께선 무슨 재주로 두 번 오고 세 번 오고 합니까?" 이번엔 창녀가 대답할 차례다. "부처는 진리를 팔고 교주들은 부처를 팔고 범부들은 교주를 팔아 살아가는데 저희 창녀들은 딸랑 몸뚱아리 하나 팔아 만 중생을 만족시키니, 저희가 바로 부처님 화신이 아니겠소이까?"

 

p142 ; 진리란 텅 빈 충만이다. 우리가 심산 고찰에서 느끼는 숙연한 흥분은 그곳에 부처가 있어서가 아니라 응고된 고요가 일으키는 포만감 때문이다.

 

p148 ; 아름다움이 순수라면 집착하지 않는 마음은 순수의 순수다... 순수를 순수 그대로 보지 못하는 건 우리들의 사고방식이 아만과 편견에 굴절되었음 외에도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노예근성에 찌들어 있어서다.... 여래를 암기해 여래의 모조품이 된다는 건 하늘 아래서 가장 비참한 유전자 변형 신품종일 것이다.

 

p165 ; 석가모닐 인위적 우상(얼짱, 몸짱)으로 조작하려 혈안하는 광신자들은 스스로의 인생이 부자연스레 꼬였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건 그대로다. 무엇이 새로운가. 오래 전에 있었던 게 후에도 있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니 하늘 아래 '그대로'말고 무엇이 중뿔나게 새롭다는 것인가.

 

p170 ; 부처가 낯선 건 그는 단순명료한데 당신은 지나치게 복잡다단해서다. 부처는 무아 non being로서 유유자적 가벼웠건만 당신은 어쩌자고 그리도 차고 넘치는 소원을 송두리째 싸안은 채 무겁게 접근하는가. 가벼워지라. 인생이란 그다지 산만한 복합체 물질이 아니다. 게다가 인생이란 쟁취나 타도의 대상도 아니다. 그대 인생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리도 바빴던가? 숨 한 번 들이쉬고 내뱉지 못하면 끝장나는 게 인생이다. 부디 케세라세라 하라. 될 대로 되라지 뭐, 될 대로 되라지 뭐.

 

p183; 하늘이 푸른 건 하늘 자체가 푸른빛의 파장을 보유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비워버리는 자기희생(보시)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다. 즉 여래는 투명한 보시로 인연법을 설하는데 아만자들은 하늘이란 相을 따로 떼내어 해석하더란 거다.

 

p185 ; 이들(부처, 예수) 대열에 뒤늦게 합류한 표류자가 한 명 더 있으니 정든 땅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달빛 따라 남태평양의 타히티로 잠적해버린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이다. " 사랑과 자비가 구원이라면 문명을 거부하는 나의 순수한 고독도 구원에 직결될 것이다. 나는 반 anti 문명의 독생자이니!" 문명이라곤 증기기관차가 고작이었을 백 년 전에 그는 왜 문명을 증오하며 원시섬으로 달아났을까. 아마도 아만으로 중무장한 인간들의 이기주의를 때묻은 문명이라 치부했을 것이다. 유도탄이 날아다니고 컴퓨터가 설쳐서 문명이 아니다. 나를 속이고 자연을 속여 살찌겠다는 욕심이 문명일 것이다. 도도한 자본주의 물결과 황금만능주의 풍조는 어느 틈엔가 싱그럽던 우리 고향 땅들을 몽땅 오염된 황사먼지 저 너머로 날려버렸다.

 

p195; 경허스님께서는 아예 소원이고 종교고 무관심마저 뒤엎어버렸다. "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존재했다. I didn't think Therefore I was"

 

p215; 금강경을 독송하라. 금강경이 싫다면 성경을 읽고 성경이 싫다면 코란을 읽고 코란이 싫다면 공자 왈 맹자 왈 읽으라. 이들은 공히 막다른 골목의 어떤 비상구, 백척간두 진일보의 기발한 아이디어, 더불어 이들은 응급실에서 피어날 기막힌 어떤 힌트가 되기도 할 것이다.

 

p218 ; 진솔하고 겸손하라. 있는 그대로 게걸스레 존재하고, 또 없는 그대로 게걸스레 존재하되 작위적으로 인생을 연기performance 하지 말라.... 제대로 보지 못해 망설이는 동안 인생은 어이없이 지나가버린다. 그야말로 인생의 낭비다...그대가 예수를 만나 낯설면 예수를 친할만치 자신의 아상을 지우지 못해서이고, 그대가 여래를 조우해 서먹서먹하다면 흉허물 없이 여래와 건배할 만치 마음을 비우지 못해서이다.

 

p246 ; 문명은 한 꺼풀씩 내게서 멀어진다. 나는 지극히 인간적이며 동물적이며, 일체의 관습을 퇴폐로 치부하기 시작한다. 오늘이 자유로워 평화라면 내일도 자유롭고 평화로워 나는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은 나를 포용하리라. 내 비록 지금은 암흑의 땅에 서성일지라도 내 사랑하는 자연은 언젠가 이곳에 해도 낳고 달도 까고 왕도 잉태해 줄 것이다. 그러나 또다시 태초의 고독이 엄습하는구나. 오, 부처님! 오 예수님! 오 타히티Tahiti여!

 

p259 ; 죽음이 희망의 대상이 될 만치 급박한 절망자들에게 옛 선사들의 질문 한 가질 던지겠다. " 나무는 솔바람이 씻어주지만 솔바람은 무엇이 씻어주는가?"

 

2013년 5월 31일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