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쳐라-경허(境虛)스님-노마드북스

 

p38 벗

만일 나와 같이 벗이 되려는 사람이 있거든

남녀노소, 賢愚貴賤(현우귀천)을 묻지 말라.

또한 친하거나 성글거나 떠났거나 합했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선배이거나 후배이거나를 가리지 말고

모두 함께 길을 가라.

사람은 저마다 제각기 한없는 보배 창고를 가지고 있어

부처와 같으니,

다만 모자란 것은 선지식의 바른 배움을 만나지 못해

삼계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일생을 浮沈(부침)하는 것일 뿐이니라.

벗을 인도하라!

세상에 어찌 저절로 태어나는 미륵이 있을 것이며

어찌 저절로 된 석가모니가 존재하랴!

 

p77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를 하는 사람은 마음 움직이지 않기를 태산과 같이 해야 하고

마음을 넓게 쓰기를 허공과 같이 해야 하며,

지혜로 佛法을 생각하기를 해와 달같이 해야 하며

남이 나를 옳다고 하든 그르다고 하든

곧은 마음을 끊지 말라.

다름 사람이 잘하든 잘못하든

내 마음으로 예단해 참견하지 말고

좋은 일을 겪든지 좋지 않은 일을 당하든지

항상 마음을 편안히 하고 무심을 유지하라.

또한 바보같이 지내고 병신같이 지내고

벙어리같이, 소경같이, 귀머거리같이, 어린애같이 지내면

마음에 절로 망상이 사라지리라.

 

p88 一體(일체)의 마음을 없애라

착한 마음이 아무리 좋다 하여도

나중에는 천상으로 갔다가 도로 떨어져

지옥으로 가거나 축생이 될 수도 있으니,

착한 마음조차 쓸데없고 다만 일체의 마음을 비우라.

이는 마음을 깨끗이 하고 혼탁에 빠지지 말라는 말과 같다.

즉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처가 되는 길이다.

따라서 마음을 항상 깨끗이 해야 하며 고요히 해야 한다.

또한 항상 곧은 길만을 가도록 하라.

이 법문을 가끔 보고 읽고 남에게 일러주면

<팔만대장경>을 읽은 공덕과 같고

그대로 공부하면 일생에 성불할 것이니

헛되이 공부하지 말고 진심으로 믿어 마음을 비우게 하라.

 

p105 세상을 버리다

산도 절도 푸르고

물도 절로 푸른데

맑은 바람 불어오고

흰 구름 흘러가네.

하루 종일 홀로 바위 위에서 노닐며

이미 내가 세상 버렸거늘

다시 무얼 바라리요.

 

p116 일의 자세

항상 어떤 일을 앞에 두고 오래 생각하라.

그 일의 모양새가 어떠하며 모양이 있는가, 없는가.

있다면 큰가, 작은가, 누른가, 푸른가.

밝은가 어두운가를 항상 호기심으로 窮究(궁구)하라.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신중하게

닭이 알을 품듯이 따뜻하게

늙은 쥐가 쌀독을 쫓듯이 진지하게

항상 마음을 집중하여 오래 생각하라.

언제나 이 뜻을 잊어버리지 말고 의심하라.

일을 하더라도 항상 의심을 놓지 말아야 하며,

멍하니 있을 때라도 의심해야 한다.

또한 정성을 다해 일을 하면 필경에는

내 마음을 깨달을 때가 있을 것이니

부디 信心을 읽지 말고 정진하라.

 

p130 道

도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며,

거짓말을 하거나 미사여구를 늘어놓거나

빼거나 더하거나 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이를 깨우치는 길은

오직 無念만으로 가능한데

어찌 마음을 비우지 않고 이를 행하랴.

망상과 지옥이 한길이며

거짓과 지옥이 한길일진대

악과 지옥이 한길임을 깨닫는다면

스스로 도를 부지런히 닦을 일이로다.

 

p131 無常法

사람이 나서 죽는 것은 피할 수가 없는 일.

만일 곁에 병들어 운명하는 이가 있거든

그를 지극히 보살피거라.

그리고 무상법을 일러주며 위로하고

정혜의 이치를 전해주거라.

인생이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자연의 법리이며 인생무상임을 깨우치게 하라.

일찍이 석가는

"죽음이란 느티나무의 많은 잎들 중에 한 잎이 지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p147 취한 듯 미친 듯

부처니 중생이니 내 알 바 아니요.

평생을 그저 취한 듯 미친 듯 보내려네.

때로 일 없이 한가로이 바라보니

구름에 갇힌 먼 산은 층층이 푸르구나.

 

p178 이별 3

그대 멀리 떠나보내는 내 마음

눈물이 흐르는구나.

인생은 한 백년 나그네

어디에 묻힐지 아득하구나.

먼 산에 조각구름 일고

해는 긴 물가로 저무네.

인간사 손꼽아보니

그저 모두가 시름일 뿐이네.

 

p233

노을 물든 텅 빈 절

무릎 안고 졸다가

소슬한 가을 바람 놀라 깨어보니

서리 맞은 단품잎만 뜰에 가득하구나.

 

※ 그냥 좋다. 2013년 5월 14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