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적인 사회주의 치하의 루마니아 시골, 소수의 독일인들이 모여 사는 한 마을에 한 소녀의 이야기-

그 사회는 한 갸냘픈 소녀에게 터무니 없는 침묵만 강요한다. 어느 곳에서 보이지 않는 희망은 그 소녀에겐 낯선 상황도, 무기력한 상황도 아닌 익숙한 모습일뿐이다. 세계2차대전이 한 마을을 죽음의 늪으로 만들어버렸고 그 늪에서 태어난 소녀는 고스란히, 입을 봉한 채로 빠져들어야만 했다. 그 누구도 '왜?'라는 말도 못한채....

그 소녀는 알고 싶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소리 없이 넘실거리는 검은 파도뿐이다. 한페이지의 역사속에 휩쓸려버린 마을.그리고 그 마을에서 태어난 소녀. 무기력한 인간들 속에서도 자신만의 세상을 담아 읊조린다.  마치 어린 시절 풀밭 위에서 뜀박질하며 혼잣말로 소리내는 것처럼....

헤르타 뮐러는 '응축된 시와 진솔한 산문으로 박탈당한 삶의 풍경을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음울한 시대상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의미화하며 시적인 언어로 보다 희망차게, 보다 찬란하게 표현하려 한 것이다. 이것이 글의 힘이며 감성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은 아닐까?

헤르타 뮐러라는 작가를 비록 노벨문학상 덕분에 알게 됐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그 덕분에 이런 아련하고 가슴 짠한 작품을 알게 됐는데 말이다. <숨그네>를 단숨에 읽어버리고 자연스레 <저지대>로 옮겨 탄 나의 선택이 필시 운명이었나 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헤르타 뮐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