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책을 손에 넣게되면 본문을 읽기 전에 판권지나 저자 서문 혹은 역자 후기를 먼저 읽는 버릇이 생겼다. 이번 책도 예외는 아니었고, 옮긴이는 제일 첫 마디에 이 책에 나오는 지독한 욕설과 외설적인 말에 대한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털어놓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책은 온통 욕설과 성적인 비속어들로 가득찼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시간때우기용 삼류소설은 아니다. 작가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동네를 배경으로 쓰면서 리얼리티를 채워넣기 위해 실제로 그 지역 디시 사람들이 쓰는 대화를 집어넣었을 따름이었다.

 

예전에 본 쉰들러 리스트나 얼마전 본 향수에서는 여성의 가장 은밀한 부분이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난 그 두 영화들을 보면서 외설적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쉰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나체 장면은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선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는 과정에서 나왔던 것이고, 향수의 나체 장면은 집단적인 광란에 빠진 사람들이 뒤엉킨 인간 본래의 감정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조지 펠라카노스의 소설에서 나오는 욕설과 비속어, 그리고 외설적인 표현 역시 단순한 리얼리티를 부과하는 장치를 넘어서 그 지역, 그 시대를 산 흑인들의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장치이자 수단일 뿐이다. 대부분의 범죄소설의 등장인물들처럼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 역시 모두 상처를 안고 있다. 주인공인 데릭 스트레인지는 정말로 사랑하는 여인을 가까이 두고서도 가정을 꾸미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멈칫거리고, 또 다른 등장인물은 테리 퀸 역시 임무수행중 흑인 경관을 사살한 일 때문에 죄책감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다.

 

소설 역시 사건의 전개보다는 상처입은 사람들의 어우러짐과 독백에 전반부를 소모한다. 마약에 중독된 걸인들의 모습이나 백인에 대한 적의를 무심코 드러내는 흑인들 모두 가슴 한가득 상처를 안고 지내는 모습들이었다. 동료 경관을 살해한 일로 상처를 입은 테리 퀸을 마지막으로 상처입은 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면서 이야기는 굉장히 빨라진다. 사실 사건의 구조 자체는 별로 복잡하지 않았지만 나를 감탄시킨 것은 지은이가 중간 중간 배치한 연결구조가 제대로 맞물려간다는 것이었다. 죽은 경관의 유품에서 단서를 찾는 장면이나 얼 부자가 파놓은 비상 탈출구가 발견되는 과정들 모두 작가의 치밀함과 꼼꼼함이 아니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을 부분이었다.

 

번역자는 후기에 조지 펠라카노스가 데니스 루헤인만큼의 통찰력과 깊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지만 그건 주인공이 흑인이라는 사실과 지나친 욕설때문에 생긴 선입견이 아닌가하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저자의 무시무시한 내공은 모든 사건이 끝나고 주인공인 데릭과 윌슨 부인이 스쳐지나가는 장면에서 살짝 엿볼 수 있다. 보통의 작가들이라면 결정적인 대화장면을 넣기 위해 몸살을 떨었겠지만 저자는 단순히 두 사람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인사를 하는 장면으로 처리했다. 짧고 간결했지만 부족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