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uble 1

 

근처

 

마흔둘 중년의 비루한 걸음이니까. 스산한 바람처럼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죽음도.... 저런걸까? 행여 삶이란 허물을 벗고, 또다른 삶을 살아가는게 아닐까.

 

그리고 또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건조하다 싶을 만큼 성실한 편이었다.

 

기획부서란 게 늘 그렇듯 끊없이 중요한 업무가 이어져왔다. 접촉사고로 라이트 한쪽이 함몰된 적이 있었는데 결국 수리를 미루다 새 차를 산 적도 있었다. 그런, 생활이었다. 오피스텔과 직장을 오가고, 밤을 새고, 회의를 하고, 기획서를 작성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돌아와 빨래를 하고, 간단한 요리를 만들거나 경조사에 얼굴을 내밀고, 가전제품을 구입하고, 오디오를 바꾸고, 외국으로 현지답사를 떠나고, 돌아오고, 그때그때 트렌드에 맞는 옷을 구입하고, 승진을 위해 노력하고, 연봉협상에 임하고, 미용실을 바꾸고, 회식을 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잠을 자고, 일어나 샤워를 했을 뿐인데 15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있었다.

 

어딘가 벗어둔 소년의 허물들도 이미 서늘한 잔해가 되어 있을 것이다

 

담담할 수 없는데도, 담담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모든 물감을 섞으면 검정이 되듯 소소한 삶의 순간들도 결국 죽음으로 물들게 될 것이다.

 

삶의 대부분이라 믿었던 직장 샐활이 그걸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살아온 삶에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느낌이 그래서 들었다. 천수를 누린다 해도 어쩌면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왁자지껄한 그들의 삶이.

 

명동, 명동이란 곳을 꼭 한번 구경을 하고 싶었다. 쉘부르란 곳이 있고 젊음과 낭만이 가득하다는 명동,,, 노선도를 보며 나는 두 가지 경우의 수를 골똘히 가늠하기 시작했다. 을지로 입구역에서 2호선을 타고 시청으로, 시청에서 1호선을 갈아타고 서울역으로, 서울역에서 4호선을 갈아타고 충무로역으로, 충무로에서 4호선을 갈아타고 명동력으로,,,, 나는 결국 보다 공신력 있게 느껴지는 시청과 서울역 방향을 선택했었다. 그리고 과연 명동을 거닐 수 있었다. 촉촉한 봄비가 우산을 타고 흐르던 기분좋은 봄날이었다. 그리고 문득, 눈앞에 서 있는 을지로입구역의 푯말을 볼 수 있었다.

 

늙었다, 와는 다른, 그러나 늙었다 근처의 그 어떤.

 

늙었다기보다는, 지친 느낌이었다.

 

삶도 죽음도 간단하고 식상했다. 이 삶이 아무것도 아니란 걸,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란 걸, 이 세계기 누구의 것도 아니란 걸, 나는 그저 떠돌며 시간을 보냈을 뿐이란 사실을 나는 혼자 느끼고 또 느낀다.

 

 

누런 강 배 한 척

 

하오의 뒷좌석엔 취객 같은 봄볕이 합승해 있었다.

 

굳이 이렇게 좋아야 할까 생각이 들 만큼이나 회사하고, 화사한 날씨였다.

 

세상은 참 많은 일들이 있는 곳이고, 어떻게든 나는 그 속에서 밥을 먹고 살았다. 살아, 온 것이다. 미워할 것도, 원망할 일도 없는 그런 인생이다. 월급을 받았고 정해진 액수의 퇴직금을 받았다. 그런걸로 된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 가족을 책임지는 것은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예컨데 다행히도, 살아왔다 할 수 있는 인생이다.

 

달칵, 문을 잠그던 그 순간 지나온 삶의 모든 것을 밀봉하는 기분이었다.

 

이제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데, 이런 하루하루를 보내며 삼십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소하고 뻔한, 괴롭고 슬픈 하루하루를 똑같은 속도로 더디게 견뎌야 하는 것이다. 인생을 알고 나면, 인생을 살아갈 힘을 잃게 된다. 몰라서 고생을 견디고, 몰라서 사랑을 하고, 몰라서 자식에 연연하고, 몰라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 걸까?

 

천국에 들어서기엔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나 억울한 존재들이다.

 

굿바이, 제플린

 

뭐랄까, 잘 익은 벼를 바라보는 농부의 눈길. 세상은 스스로 고개숙진 자를 돕는다. 내가 보기엔 확실히 그렇다. 열심히 살자.

 

별거 있냐? 먹고 자고 싸면서 시간을 보내는거지. 그럴지도, 라고 나는 생각했다.

 

깊

 

끝까지 이럴래?

 

무수한 의혹이 제기되어고 대다수에겐 희망을 향한 근원 모를 자성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양을 만든 그 분께서 당신을 만드셨을까?

 

굿모닝 존 웨인

 

축구도 잘해요

 

크로만, 운

 

Double 2

 

낮잠

 

달아난 저녁잠처럼 세월도 그렇게 지나간다. 이제 어떤 버스도 오지 않는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영원한 퇴근이다.

 

걷잡을 수 없는 무력감이 밀려들었다. 할 일 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자괴감, 쓸모 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허무감, 길고, 시들고, 말라가는 시간의 악취

 

살갑게 평생을 살진 못했지만 언제나 곁에 있던 아내였다. 앙상한 육신에서 온기가 빠져나가는 걸 느끼며,,, 아.. 하고 나는 부르짖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어떤 절차란 게 있겠지, 막연히 여겼던 죽음의 과정은 간결하고 간결했다. 자궁이 적출된 배 위에 얼굴을 묻고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탯줄이 끊어진 예순두살짜리 태아가 된 기분이었다. 아내를 위해 해준 것이 없고 스스로를 위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약과주사, 약과 식사, 주사와 식사, 식사와 설사.... 의미 없이 티브이를 보다보면 겨우, 또 겨우 하루가 저물었다.

 

수십년을 일하고 일구어도 정작 남은 게 없는 인생처럼.

 

아.. 지나간 세월은 어쩜 저리도 아름다웠단 말인가... 나는 그만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가난보다 큰 질병은 세상에 없다. 내가 알기론, 그렇다 그리고 지금.

 

먹고 살고, 먹고, 살아야 하고... 오십년의 세상살이가 그녀를 잊게 했지만, 풀이 무성한 기억의 저변에는 그녀라는 운석이 단단한 결정으로 남아 있었다.

 

사람의 일은 알 수 없다. 그래서다.

 

루디

 

용

 

과연 아름다웠으나, 맑지 않은 하늘이었다.

 

정치꾼이 된 동지도, 귀족노조가 된 후배로, 재벌의 뒤를 닦는 변호사 선배도, 고문후유증으로 여즉 노모가 대소변을 받아야 하는 친구도, 실은 독재가 그리웠던 이웃도, 잘살면 그만인 민족도, 여전히 건재한 친일 후손도, 그보다 더 건재한 발포 책임자도, 어쩌지 않고 어쩔 생각도 없는 대다수도, 실은 있지도 않았던 이념도,있어도 소용없는 법도, 아빠도 2번 찍지 그래? 하던  딸도, 있지도 않았던 민주와 민중도, 그래서 모두가 이미테이션처럼 느껴지는 골짜기였다.

 

비치보이스

 

위선과 부패, 교만과 교활, 비굴과 비리가 뒤섞인 지옥의 향이었다.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학습지를 시청하고, 줄곧 같은 학원을 다니고, 우루루 몰려가 같은 병원에서 포경수술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반론을 제기하고, 싸우고, 그런 건 너무 힘든 일이다.

 

바다는 참, 힘들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스피린

 

엇비슷한 사람들의 뒷모습과 엇비슷한 포플러들의 녹음, 반짝임, 풍광, 흔들림.

 

나는 일을 할 수 있거, 나는 물건을 살 수 있다. 확실히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삶이다. 한 장의 메모지를 펼쳐 놓고 나는 다시 메모를 시작했다. 일단 사야할 물품들의 목록과 언젠가는 사야할 물품들의 목록을.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고, 나는 대답했다.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서 아무 말 없이 우리는 서 있었다.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세계의 어딘가에 순간 올라올 만큼 올라와버린 느낌이었다.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좋은 시절은 지나갔다. 그리고 기나긴, 끝없는 내리막길을 휠체어를 타고 내려온 기분이다. 특히 지난 몇년은 어디 남산 계단 같은 곳에서 누군가 휠체어를 떠민 느낌이었다.

 

주인을 물고 도망친 개처럼 온 동네를 배회했었다.

 

오늘 같은 날 땡볕에 세워둔 차의 운전석에 올라앉은 기분이다. 시동은 안걸리고, 양복은 모직인데 에어컨은 고낭난 그런 기분이지.

 

이런 놈에게 인생을 걸었다는 사실이.. 어둑해진 하늘을 바라보다 나는 갑자기 외롭고 쓸쓸해진다. 돈 없는 인간끼리, 보탬이 안되는 인간끼리 가족이 된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비극이다. 덥다.

 

그런건 비극의 미끄덩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누굴탓하겠는가, 영양가없는 날 탓해야지.

 

별

 

물살만타면 일년이 못 가서도 망가지는 인생이다.

 

돌아보니 나쁜 꿈 같고... 같지만, 잠을 깨면 언제나 먹고살아야 할 벌건 하루가 있었다. 낮은 길고, 일은 많고... 밤은 짧고, 꿈은 없는...

 

오분이면 할말이 바닥나는 신세가.. 그런 신세의 인생이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공허해진다.

 

아무것도 모르고 죽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반짝이는 것으로 가득한 세상은... 언제 사라졌던가.. 사라진 것인가..

 

아치

 

벼랑에 몰려 겨우 생각한게 자살인 인간이다. 도둑질도, 사기를 칠 생각도 못하는 여린 인간이다. 보아하니 당하고 또 당한 인간이다. 당한 걸 갚아 줄도, 말할 줄도 모르는 인간이다. 나는 갑자기 가슴이 뭉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