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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카스테라보다는 괜찮았다. 박민규의 첫작품을 카스테라로 만난 나로서는

이작품이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그당시로는 대중적으로는 어필하기 힘들것 같은 글들이어서 참 머라고 평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시 만난 박민규는 약간의 대중성과 섬세한 감성을 잘 어우르는 매우 폭발력있는 작가로 다가왔다.

제목이 너무 거창하다, 허세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누군가 내게 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70~80년대의 대략 거창하고 고상해 보이는 의미 없는 단어들의 조합을 교양이라 불리우던 시절의 감성을 공략하기 위해 지어진 제목은 확실히 아니다.

오히려 박민규는 이 시대의 아이너리티를 대표하는 작가로, 기존의 사회적 통념이나 허세를 조롱하거나 비판하는 관점에 서 있기 때문에.

오래전 기억의 첫사랑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이렇게 적절하게 잡아낼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단순히 신파가 될 수 있는 이야기의 경계를 멋드러지게 가로지르며 하나의 과하지 않고 상투적이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난해하지도 않은 적절한 대중성 역시 확보하며 그의 표현을 빌린 '그럴듯한' 글을 써냈다.

스토리상의 구성도 독창적이고, 박민규 특유의 엉뚱함과 유쾌함이 더해졌지만, 더없이 가슴 쓰린 상실 상실감과 삶의 근원적인 고독과 방황, 사랑의 의미를 가볍지 않게 집어냈다.

꼭 한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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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많은 것들의 이름을 뺏어간다고 눈을 맞으며 나는 생각했다.

가능성이 없는 애기를 잘도, 진지하게 그녀에게 건넸었다.

이상하게 그 순간 가느다란, 그러나 단단한 가시 하나가 내 몸속에 남아 있는 기분이었다.

가혹한 세상과... 들러리 선 시녀처럼 서 있던 그녀와 나를 떠올린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고 한다.

말을 쉬게 하려는 것도, 자신이 쉬려는 것도 아니었다.

행여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봐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려주는 배려였다.

그리고 영혼이 곁에 왔다 싶으면 그제서야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는 사람만이 가득했을 뿐 그 누구도 자신의 영혼을 기다려주지 않던 시절이었다. 영혼의 걸음은 생각보다 느리고, 세월은 내가 올라탄 말고도 같은 것임을. 그때는 알수 없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언젠가는 말을 세우고 자신이 달려온 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인간에게 결국 영혼이 필요하고, 영혼은 인니언만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정말이지 알 수 없는 거야, 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알수 없는 인생처럼.

그것은 입 안 가득 머금고 이는 지금의 와인처럼 깊고, 복잡한 맛이었다.

그 사소한 말들, 아무것도 아닌 말들을 할 수 없어 나 역시 수화기를 내려놓곤 했었다.

누군가를 사랑한 삶은 기적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던 삶도, 기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서른 넷이라는 나이가 차고 서늘하게 현실처럼 머릿속에 스미는 느낌이다.

그녀들의 패션과 사생활까지도 알아야 하는 세상이다.

모두가 아는 말들이지만, 또 세상엔 이런 말들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일상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이 기억의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없다.

추억이란 이런 것이다. 결국 인간의 추억은. 열어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내용물이 담겨 있는 녹슨 상자와 같은 것이다.

특별한 변화가 있을리 없는 요한이었지만, 변하지 않은 이 삶에서도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따라 뛰는 사람들, 피리소리를 따라 어디론가 달려가던 사람들과,,,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세상의 풍경들을 그저 우두커니 바라볼 뿐이었다. 아름다워지는 여자들... 아름다워져야만 하는 여자들과 학력을 차를 또 집을 말하자면 힘을 가져야만 하는 남자들.. 서로에 의해, 서로에 비해, 올라선 서로를 위해 구축하던 프리미엄과 올라서지 못한 서로에게 요구되던 그만큼의 스펙에 대해.. 그러나 전혀 달라지지 않는 삶의 성질에 의해.. 오로지 스펙과 프리미엄과 늘어날 뿐인 이 삶에 대해.. 하여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30년만 지나면 허물어야 할 한 채의 집을 위해, 실은 조건과 조건,.. 이윤과 프리미엄에 의해 만난 서로에 의해.. 하여, 실은 있지도 않았던 사랑에 내내 절망할 이 삶에 대해... 그 생활에 대해... 하여 자신의 자녀밖에는 사랑할 수 없는 이 삶에 대해.. 다시 사랑이란 명목으로 가두고 사육하는 이 삶에 대해... 갖추고 올라섰다 한들.. 이틀 테면 일병 7호봉 정도나 될 그 대단한 프리미엄에 대해... 실은 허망한, 하여 과시밖에는 할게 없는 이 삶에 대해...

언제나 그런 묘한 구석이 자리잡고 있었다. 말하자면 너무나 직설적이고 현실적이어서, 도리어 상대의 말문을 막히게 만드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군만두를 먼저 만났더라면, 나는 별다른 이유없이 그 아이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의 향방 역시 몹시도 다른 포물선을 그리고 또 그렸을 것이다.

미녀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에 나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에게 우리가 있다는, 그리고 우리에게 내가 있을 거란 그 사실이 조금은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이별이 인간을 힘들게 하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고통보다도, 잠시나마 느껴본 삶의 느낌,.. 생활이 아닌 그 느낌.. 비로소 살아 있다는 그 느낌과 헤어진 사실이 실은 괴로운게 아닐까... 생각이 든 것이다. 쏟아지는 물줄기처럼 영영 이어질 생활과,, 어느 순간 배수구 속으로 맴돌며 사라질 허무한 삶...

숨을 쉬고, 일을 하고,, 귀찮아도 밥을 먹고, 견디고... 잠을 잔다. 그리고 열심히 산다.. 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삶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랑이 없는 삶은

아무일 없이 맞이하는 아침과 아무일 없이 맞이하던 밤

그런 낮과밤이 모이고 모여... 긴 세월이 흐른 후에는 하나의 섬처럼 자리하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야할 곳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가야할 길이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봄날이었다.

나는 책을 읽거나, 이를테면 고등학교 때 풀지 못한 함수 문제를 다시 한 번 풀어본다거나.. 시춘문예에 보냈던 소설을 꺼내 느닷없이 교정을 보거나.. 했다. 맞춤법이 틀린 곳이 일곱 군데, 한자의 표기가 틀린 곳이 두군데, 띄어쓰기가 틀린 곳은 서른한 군데.. 살아온 인생처럼,

여기가 막바지구나 생각이 들 무렵의 어느날 나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문득 이제 다시는 예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는 스스로를 느낄 수 있었다. 툭, 목련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환한 오전이었는데,, 불꺼진 밤의, 회전목마에 홀로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잠이 오지 않았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어떤 조짐이나 징후도 없이, 실은 세 개의 짐노페디 중 1번처럼 느리고 비통하게 그해의 봄은 흐르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 순간의 우리는 갑자기 한 변이 사라진 삼각형과 같은 것이었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누워 있는 요한과 마찬가지로.. 어떤 의미로든 우리에게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반달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러나 그나마 반달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애매한 달이.

살기 싫은 것과 죽지 못하는 것엔 또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물론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인생의 대부분은 그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밖에 없는 일들로 채워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어떤 역할을 나는 해야만 했다.

그리고 결코 자신도 행복하지 않다는 아버지의 말이 사실일거라 생각했었다. 인생은 매우 이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숙제처럼 밀려 있던 앞날과, 아무런 검사도 받지못한 지난날들이 엎드린 시신처럼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 누워 있던 밤이었다.

질문과 답을 통해 인간은 거짓을 쌓아나가고, 결국 그것을 진실이라 믿을 뿐이라고, 무렵의 나는 생각했었다.

행복할 거라 나는 생각했었다. 골목의 끝에서 고마워요, 하던 그녀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음악 정말 잘 들었어요... 그때 어둠에 잠긴 내 발목을 툭툭 건드리고 지나가던 숭어... 같기도 하고, 또 송어여도 좋은 바람의 감촉을 잊을 수 없다. 아득히 이제는 흘러가버린 그 순간과, 그곳에 잠시 함께 머물렀던 우리를 잊지 못한다. .... 손을 흔들며 사라지던 그녀와,, 역시나 손을 흔들고 사라지던 요한의 뒷모습이 지금도 영원하다는 사실을 그 순간의 나는 말지 못했다.. 알수 없었던 것이다.

깜박이며 불을 밝히고 있던 희망이 생각난다. 그 희망을 흔들며 지나가던 바람처럼 실은 그런 식으로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도 인간은 머물수 없음을,,, 하여 인생은 흐르는 강과 같다는 사실을 무렵의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갑자기 다가올 모든 일과 갑자기 변해갈 모든 것들에 대해 어떤 대비도 할 수 없던 겨울이었다.

인간의 존재감과 상실감이 골고루 섞인 그런 풍경과

두시간을 기다려 5분 열차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아마도, 하고 나는 애기했었다. 그런걸 거야. 여기까지 왔는데 이건 꼭 타고 가야지, 그런 심리가 되는 거지. 두 시간 줄서서 5분 열차, 두 시간 줄서서 5분 회전바퀴, 두 시간 줄서서 5분 바이킹.. 우와,, 거의 하루인걸... 한적한 느낌의 참으로 시시한 회전 커피잔에 앉아 나는 생각했었다. 누구나.. 그럴 듯한 인생이 되려 애쓰는 것도 결국 이와 비슷한 풍경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이왕 태어났는데 저건 한번 타봐야겠지, 여기까지 살았는데, 저정도는 해봐야겠지.. 그리고 긴긴 줄을 늘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버리는 것이다. 삶이 고된 이유는.. 어쩌면 유원지의 하루가 고된 이유와 비슷한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때문에 나는 대학을 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누구나 그럴 듯한 학교를 나오고, 그럴 듯한 직장을 얻고, 그럴 듯한 차를 굴리고, 그럴 듯한 여자를 얻고, 그럴 듯한 집에서 사는.. 그럴 듯한 인간이 되고 싶은 시절이었다. 그럴 듯한 인간은 많아도 그런, 인간이 드문 이유도.. 그럴 듯한 여자는 많지만 그런 ,, 그녀가 드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럴듯한 것은 결국 그런 것이 될 수 없지만

이마도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겨울이었을 것이다.무엇을 해줄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런 보잘것없는 기억의 편린조차도 더없이 눈부신 순은의 반짝임으로 떠오른다. 인생에 주어진 사랑은 왜 그토록 짧기만 한 것인가. 왜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보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왜 인간은, 자신이 기르는 개나 고양이만큼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인가. 왜 인간은 지금 자신의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망각하는 것일까. 알 수 없다.

전구가 꺼지듯 어느날 갑자기 빛이 사라져버린거야. 유리처럼 굳은 외형은 그대로지만 도리어 무서운 얼굴이란 생각이 들 때가 더 많았어, 그때 알았지, 인간의 영혼은 저 필라멘트와 같다는 사실을, 어떤 미인도 말이야. 그게 꺼지면 끝장이야. 누구에게라도 사랑을 받는 인간과 못 받은 인간의 차이는 빛과 어둠의 차이만큼이나 커.

변함없이 저렴한 삶이 끝없이 이어진다 해도, 역시나 갈 길을 알 수 없다 해도... 나는 이 평범한, 작은 손 하나를 언제까지라도 놓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가난한 인간은 피곤하기 마련이고, 피곤한 안간에겐 언제나 한계가 주어지는 법이라고 길을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일상이란 이런 것이구나, 이런 식으로 평생을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왜 인간이 자신의 자아를 갖기 힘든지를 알 수 있었다.

너무나 편안해 보였으므로, 자신의 미소를 제외한 모든 세계를 불안하게 만드는 미소였다.

결국 세상의 매듭을 푸는 것은 시간이다.

난데없는 희망이 그토록 우리의 가까이에 있던 시절이었다.

그리 상태가 나빠보이진 않았는데, 그렇다고 확실히 그 사람 괜찮던걸? 할수는 없는 부류였다.

끊임없이 비가 내리던 여름이었다. 후덥지근하면서도 축축하고 반팔을 입으면 서늘한데 긴팔을 입으면 땀이 차는.. 그래서 여름도 가을도 아닌 이상한 계절을 맞이한 기분이었다. 모쪼록 내 마음도 그런 계절을 닮아 있었다. 화나 났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화를 풀었다고 말할 수 없고, 우울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코 기쁘다고 말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왜 사는 걸까? 손등을 핥아대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문득 상념에 빠져들던 여름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시시하게만 여겨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