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즘<Narcissism>은 자신이 리비도의 대상이 되는 것을 지칭하는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쉽게 말해 '자기애'라고 한다.  유아기에는 리비도가 자기 자신에게 쏠려 있다가(1차적 나르시시즘) 자라면서 점차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 외부의 대상으로 향한다는 것이 정신분석학의 입장이다.  그러나 애정생활이 위기에 직면하여 상대를 사랑할 수 없게 될 때, 유아기에서처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상태로 되돌아가는 퇴행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2차적 나르시시즘이라 말한다.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는 바질의 초상화 모델이 되면서 자신의 아름다움에 눈뜨기 시작한다.  화가가 숭배해 마지않는 도리언에 대한 개인적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그림은 모델인 자기가 봐도 자신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자신의 초상을 바라보는 도리언의 모습은 1차적 나르시시즘에 가까워 보인다.  갑자기 정신분석 얘기를 하는 것도 이 책이 던지고 있는 최초의 물음인 '영원한 젊음'이 내포하고 있는 자기애적 성질에 대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우연히 삼류 극장에서 연극공연을 보다가 시빌베인이라는 여배우를 알게 되어 사랑에 빠진다.  그의 눈에 비친 그녀는 어떤 역할도 소화해 낼 수 있는 훌륭한 배우였다.  그는 그녀와의 2주동안의 만남으로 격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구두로 약혼까지 하게된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이성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새롭게 눈뜨게 된 예술에 대한 사랑이었으므로 그녀가 진정한 사랑에 눈 떠 연극에 흥미를 잃었을 때 그의 사랑은 산산조각나버린다.  그의 사랑은 여전히 자신의 관점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도리언이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성에 대한 진정한 사랑에 눈뜨지 못하게 되는 것은 바질의 친구였던 헨리경의 영향이 지대했다고 할 수 있지만 지나친 자기애가 낳은 결과이기도 했다.   

그녀에 대한 더이상의 열정과 희망을 느낄 수 없었던 비참한 연극이 끝난 후 그는 매몰차게 그녀에게 사랑의 끝을 고하고 집에 돌아온다.  그런데 화가 바질에게 선물 받았던 초상화 속 자신의 모습이 조금 변화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그림 속 모습을 질투하며 자신은 젊음을 그대로 유지하고 대신 그림이 늙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던 바램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림에 대한 놀라움도 잠시 이튿날 그녀의 자살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그는 말할 수 없는 양심의 가책에 휩싸인다.  그러나 헨리경의 합리적(?)인 조언과 초상화 속 그림이 자기 대신 모든 죄를 쓰게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그 일은 금방 잊혀진다.  그리고 철저히 유미주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헨리경의 사상을 쫓아 영원한 젊음, 무한한 열정, 은밀한 괘락이라는 늪에 서서히 빠져들게 된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표면적으로 그의 모습은 완벽에 가까웠다.  그는 감각에 충실한 삶을 살며 감각만이 진정한 영혼을 불러올 수 있다는 헨리경의 말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그의 기행은 자신의 초상을 그려주었던 화가 바질 홀웨이를 살해함으로써 정점에 이른다.  그러나 살해의 공포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점점 그를 옥죄이게 만든다.  그는 감각을 통해 영혼을 치료한다는 헨리경의 말을 되새기며 또다른 죄로써 죄의 기억을 없애려 발버둥치지만 오히려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의외의 복병을 만나면서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  

<행복한 왕자>속 왕자는 자신의 금박을 다 떼어주면서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지만 막상  금박이 다 떨어져 흉한 모습이 된 왕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빛나는 동상이었을 때는 찬미하던 사람들이 막상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떼어줘 흉하게 된 왕자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보기 싫다는 이유로 동상을 녹여버리게 된다.  이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속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현실세계는 허위와 죄악만이 가득하고 이것을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술뿐이라는 유미주의의 대표주자답게 그가 그린 현실세계는 냉철하고 비정하다.  그러나 종국에는 파멸의 길을 걸었던 도리언 그레이의 모습을 통해 인간은 신의 피조물로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해질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며, 신이 인간에게 부여해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인 '영혼'만이 고스란히 다시 신에게로 돌아간다는 설정은 한가지 의문점을 남겨 놓았다.  이것은 행복한 왕자 속에서 마지막까지 녹지 않았던 왕자의 납으로 된 심장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책을 덮는 순간 고전이라고 생각되지 않을만큼 순간순간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전개와 결말에 역시 오스카와일드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세기말의 사상이라 일컬어지는 당시의 문예사조였던 유미주의는 소설 속 헨리경이 쏟아내는 거침없는 말 속에 고스란히 들어있어 헨리경의 어록만을 따로 묶어 읽어봐도 이 책은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유미주의는 중세의 공리주의나 도덕주의에 맞서 새롭게 출발했던 문예사조였지만 결국에는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숙제는 그가 남긴 다른 책들을 읽어봐야 가능 할 것 같다.  세기말과 다를 것 없는 현대에 잘 어울리는 고전이며, 스릴러나 추리물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