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고 만만해보이는 책이다. 그렇다고 얕봐서 하는 얘기는 아니다. 금방이라도 책장을 추르륵 넘겨보면 보통 사람인 나로서는 흉내낼 수조차 없는 다양한 색의 조화와 번짐이 풍부한 수채화가 독자의 눈을 반긴다. 그림의 '그'자도 모르는 나여서인지 순간 미묘한 감정의 꿈틀거림과 희한하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글자가 있기 전에 그림이 있었다고 하던가. 미묘한 감정의 꿈틀거림이란 그림을 보고 느낀 내 본능적인 감정인 것 같고, 희한하다는 느낌은 '이 사람, 왜 이런 그림을 그렸지?' 그런 물음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까 화가란 예술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을 이렇듯 담담하면서도 세심하게 그릴 턱이 없고, 그린다고 하더라도 습작에 지나지 않을 테니 내가 볼 일이 없는 것이다.

<브라보 내 인생>은 손문상 씨(44)가 펴낸 화첩 산문집이다. 손문상이란 분은 시사만화가라고 하는데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나는 신문을 잘 보지도 않을 뿐더러 이 책의 원조가 되는 '화첩 인터뷰'는 이제껏 부산일보에 실렸던 것들이란다. 희한하다는 내 첫느낌이 크게 틀리지는 않은 듯 신문이란 곳의 지면에서 만날 수 있는 신문의 논리에 맞는 사연과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보통 경쟁의 논리에 물든 우리들은 80:20의 법칙을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에 조직 내 2명의 잘난 사람이 8명을 먹인다는 의견에 선듯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손문상 씨는 붓을 들고 8명의 선하고 강직한 사람들, 따스한 사람들-비범치 않아서 비범한 (...) 거창한 명분과 대의가 없이도 삶을 기어이 살아 내고 있는 이들이(여는 글 중에서) 세상을 이끌어간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다수이면서 소수자인 그들의 이야기가 곧 다가올 한겨울, 일과 가정사에 지친 어깨와 손을 녹여줄 것만 같다. 너무 추워서 몸을 녹일 겸 찾아든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 안이나 군고구마 파는 아저씨의 손난로 옆에 다가서는 기분으로 손문상 씨의 화첩 산문집을 만나보자.

화첩 산문집과 함께 한 나도 조금은 소소한 일상의 맛을 알 것 같고, 내가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인터뷰 요약글과 그림으로 만나보았으니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도 한 번쯤 눈을 돌려보아야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해본다. 언젠가는... (부산에 가서 대구탕 한 그릇 하고 싶다)   ^^

책의 표지는 그림을 감상하기에 넉넉한 크기다. 책표지를 위로 하고, 슬그머니 책을 90도로 기울이고는 책표지 위로 두 손바닥을 편안하게 내려놓으면 딱 표지를 감쌀 정도가 된다. 참! 이 책 뒤쪽에 소설가 김곰치 씨가 쓴 약 25쪽 분량의 재미난 인터뷰 글은 이 책의 별미 중의 별미다. 김곰치 씨와 손문상 씨는 형-아우 사이 같은데 김곰치 씨가 손문상 씨를 인터뷰한 글-재능보다 깊은 세계의 첫 문단부터 완전 웃겨서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평소 그를 '형'이라 부르지만, 이 글에서는 떼 버린다. 손문상, 이 사람이 말야,

이런 식으로 하겠다. 막 나가는 이유는? 이유 없다. (...)

오늘만은 맘껏 흔들고 걸고 퉁기고 해 보겠다. (87쪽)

너무나 유쾌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지하게 '사람' '언론' '삶의 철학'에 대해서도 잠깐 생각해보았다. 마지막으로 나도 유쾌한 김곰치 씨처럼 손문상 씨에게 막 나가보면 안.. 될.. 까..

나는 그가 단단하기를 바란다.

(...)

다시 한 번 올해 손문상은 열심히 화이팅! (111쪽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