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꿉꿉해져 있던 어느 오후. 불쑥 택배가 도착했다.

‘아! 책이 오기로 되어 있었지?’

기다리던 책이 손에 들려지니 눅눅했던 표정이 한층 밝아진다. 그러면서 몇 장 들추는데 와우! 기대가 크면 실망도 어쩌고 하는 것은 이럴 때는 말짱 거짓말이다. 기대했던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훨씬 맛있는 책. 선 채로 책의 반 이상을 넘기다가 ‘참! 앉아서 편하게 보면 될걸?’하며 자리에 앉아 천천히, 야금야금 읽은 책. <사진책과 함께 살기>다.

 

그러고보니 요즘들어 <PHOTONET> 혹은 <PHONO>의 책을 꽤 자주 접한다. 의도했던 것은 아닌데 관심가는 책, 의미있는 책들을 찾아 읽다보니 그렇게 된 모양이다. <내가 갖고 싶은 카메라>(윤광준),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아라키 노부요시), <클래식, 현대 음악과의 만남>(데이비드 맥클리리)와 지금 읽고 있는 <당신의 첫 번째 재즈 음반 12장>(황덕호) 등등. 전몽각 선생의 <윤미네 집>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영감을 받았다는 <마음을 쏘다, 활>(오이겐 헤리겔)은 여전히 리스트업만 해놓은 상태. 좋은 책을 만나는 것만큼 좋은 출판사를 만나는 것도 무척 반가운 일이다.

 

최종규의 <사진책과 함께 살기>는 ‘좋은 사진책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어 읽게 된 책이다. 사진을 찍다 보니 ‘사진책 읽기’도 당연히 필요했는데 어디서부터 읽어야할지 좀 막연했다. 요즘 나오는 사진책이야 이리저리 골라 읽기는 하지만, 헌책방에서 해묵은 사진집이나 사진책을 만날 때면 원체 무지한 터라 모르는 상태라 선뜻 고르기가 망설여졌다. 그래서 “사진책에 대한 사진책”이라는 이 책이 더욱 반가왔다.

 

그런데 글을 읽다보니 책도 책이거니와 저자인 “최종규”라는 사람 자체도 흥미롭다. 그에 대한 간단한 프로필은 얼핏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사랑, 헌책방에 대한 애정,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감사 등 따뜻한 정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의 글을 통해 아름답고 예쁜 우리 말을 다시금 느껴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저자가 수십 여년 헌책방을 다니며 모은 사진책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그 얘기만도 이미 풍성하고 알차다. 하지만 읽다보면 사진책과 헌책방 이야기들을 통해 이 땅의 척박한 문화에 대한 질책과 호소 또한 깊이있게 들려온다. 그의 말처럼 비싼 사진기는 계속 사대면서 사진책 읽기는 게을리하는 지금의 풍토, 좋은 헌책방들이 자꾸만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현실 등은 무척이나 공감가는 부분이다.

 

저자는 안승일의 <굴피집>을 시작으로 에드워 슈타이켄의 <인간가족> 등 숨은 사진책에 대한 소개와 ‘아벨서점’, ‘뿌리서점’ 등 헌책방 이야기 그리고 전민조의 <농부>, 전몽각의 <윤미네 집>, 강운구의 <시간의 빛> 등 의미있는 사진책들을 잔잔하고 담담한 말투로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책이 있었구나!’하는 감탄도 하게 되고, 오래도록 잊고 있던 헌책방의 책냄새가 불현듯 그리워졌다. 요즘은 헌책방이 많이 줄기도 했지만 나부터도 대형서점 아니면 온라인 주문을 하다보니 헌책방 다녀본지가 꽤 된 것 같다. 대학 다닐 때는 시간이 날 때면 청계천 주변의 헌책방을 쏘다니는 것이 버릇이었는데도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글을 쓰려면 글읽기를 해야하고, 그림을 그리려면 그림 읽기를 하듯,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 읽기’도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 기본이다. 너도나도 사진은 마구 찍어대면서 ‘사진읽기’는 하지않는 현실. 표현은 다르지만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저자의 조용한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읽을수록 의미가 깊어지는 책이다. (2012.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