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얘기하자면 나는 맛집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음식 모험(?)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모험은 고사하고, 전혀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기보다는 이전에 한 번 맛봤던 음식 혹은 나름 검증(?)된 안전한 메뉴를 고르는 쪽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한 번 제대로 맛을 보고 나면, 이후로는 내내 그 음식만 먹곤 한다.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한 번 입맛을 트면’ 그 이후로는 내가 언제 그 음식을 꺼려했냐는듯 내 발로 찾아가 먹기까지 한다. 버릇치고는 참 별난 버릇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좀 우습지만, 그렇게 해서 먹기 시작한 것이 쫄면, 메밀국수, 곰탕/설렁탕, 추어탕, 장어구이, 홍어 등등이다. 지금은 무척이나 좋아하고, 어쩌다 생각나면 당장 군침이 도는 메뉴들이다. 아! 그래도 아직까지 곱창과 양, 천엽, 이런 것은 내키지 않는다.

 

어쨌거나 그런 버릇아닌 버릇이 있다 보니, 맛집을 가더라도 새로운 맛집보다는 해묵고 오래된 맛집을 자주 찾아가곤 한다. 요즘은 맛집 블로거들이 워낙 활발하다 보니 맛집 정보는 넘쳐난다. 하지만 블로그의 정보란 수준이 천차만별이기도 하고, 극단의 경우 암묵적 혹은 공공연한 홍보성 포스팅이라 별로 의미를 두지 않게 된다. 그보다는 오히려 낡기는 했어도 손때묻고 오래된 맛집, 어떤 때는 내 나이만큼 오래된 집들을 믿고 찾아간다. ‘세월의 검증’만큼 확실한 리뷰는 없으니까.

 

<서울맛집유랑>은 제목 그대로 서울의 맛집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다양한 음식 메뉴별로 서울 구석구석의 맛집 175곳을 선별하여 소개하고 있다. 음식의 종류는 한식, 중식, 일식은 물론 프랑스요리와 햄버거, 분식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다양하다. 소개된 맛집들은 대부분, 맛집에 나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 그 집!’하고 알만한 집들이고 아직 생소한 집들도 꽤 있다.

 

이번 서평은 맛집 리뷰를 겸하기로 한 터라, 그 중 한 예로 엊그제 다녀온 ‘무교동 북어국집’ 얘기를 해야겠다. 이 책에서는 “해장국 편” 말미에 전화번호로만 소개된 집이다. ‘무교동 북어국집’은 다른 상호없이 글자 그대로 북어국집이다. 연륜이 묻어나는 나무간판에는 ‘북어국집 since 1968~’이라고 씌여져 있어서 이 집의 역사를 짐작케 한다.

 

오래된 맛집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집도 점심시간에 훨씬 앞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특이한 것은 기다리는 손님들이 홀 안쪽까지는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식사 중인 손님들이 부담감을 느낄까봐 입구에서 일정선 이상은 들어오지 못하게 한 주인의 세심한 배려다. 오래된 맛집일수록 친절함은 때로 과감하게 포기(?)하곤 하는데, ‘북어국집’은 주인의 배려만큼 종업원들도 친절해서 더욱 좋다.

 

북엇국이 다 그렇겠지만, 이 집의 북엇국도 내용은 단순하다. 진한 국물에 부드러운 북어와 길쭉하게 썰어넣은 두부, 파송송 계란탁이 전부다. 하지만 구성은 단순해도 맛은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서, 역시 세월의 검증을 받은 집답다. 테이블에 미리 셋팅된 반찬도 정갈하고 시원한 물김치가 곁들여 나오는 것이 색다르다.

 

 

이 책은 한동안 내게 금서(禁書)였다. 일하다말고 머리를 식힐 겸 책을 펴면 가고 싶은 집, 먹고 싶은 음식들이 자꾸 생각나 내내 군침이 돌기 때문이었다. 이는 열심히 발품 팔고 책을 쓴 저자의 공도 있겠고, 소개된 집들 자체가 대부분 그만한 내공이 있는 집들이기에 가능한 얘기다.

 

물론 오래된 맛집이라고 맹목적으로 신뢰할 일은 아니다. 십 수년 동안 몇 번씩 갔던 집인데, 주인이 바뀌었는지 혹은 내 입맛이 달라진 것인지 실망하는 경우도 가끔씩 있으니까. 국물이 전에 없이 싱거워진 해장국집, 갑자기 조미료 맛이 들척지근할 만큼 느껴졌던 떡볶이집 등. 명성과는 상관없이 다시 갈 일은 없겠지만 주위에서도 그런 평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뭐든 씁쓸하게 변하는 것은 있게 마련인가 보다.

 

저자는 책 중간중간에 음식과 관련한 자신의 추억담을 소개하기도 하고, 맛집 블로거로서의 고충도 간간이 내비친다. 맛집에 대한 얘기는 단지 조언일 뿐이라는 그의 얘기도 허세없이 솔직해서 좋다. 입맛이야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뭘 먹을지 고민은 되고, 아무 집이나 무모하게 가기는 싫다면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