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 Color)”에 대한 책을 읽자니 오래전에 보았던 <마지막 황제>와 <국두>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두 영화 모두 작품 자체도 좋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다양한 색의 변화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었다.

<마지막 황제>에서는 “황제의 색”이라는 어린 푸이의 노란색 옷, 결혼식 날 황후가 입은 붉은색 옷, 그리고 공산혁명에 의해 왕조가 몰락한 뒤의 암울한 색까지. 당시의 시대상과 문화가 옷색깔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었다. 공리가 주연했던 <국두>는 염색장이라는 장소적 배경 때문에 색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아름답다 못해 현란하기까지 한 온갖 색깔의 천들이 화면을 내내 뒤덮었던 기억이 난다. 그 영화에서도 감정의 기복에 따라 화면의 색이 다양하게 펼쳐졌던듯.

 

이렇듯 색(色)은 눈에 보이는 색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색은 언어처럼 하나의 상징이자 메타포이다. 같은 색일지라도 민족과 문화에 따라 의미하는 바도 각양각색이다. 경우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시대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

그래서 색의 발달에 따라 그에 관련한 언어도 다양하게 구사된다. 우리나라만 해도 예전에는 ‘노랗다, 노르스름하다, 누리끼리하다’ 등등 한 가지 색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뉘앙스의 차이가 있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색에 관한 어휘가 퇴화된 느낌이다.

 

<The Color-세계를 물들인 색>은 색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의 오방색(五方色)이기도 한 “청적흑백황(靑赤黑白黃)” 다섯 가지 색과 보라색과 녹색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색깔별로 그에 관한 이야기와 시대와 지역에 따른 다양한 쓰임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중세유럽과 아시아, 힌두교와 불교, 아메리카 인디언과 아프리카까지 여러 민족과 문화 안에서 다양하게 나타난 색과 그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를 들면, 빨간색은 아프리카와 중국 등지에서 풍요와 축복의 의미로 쓰인다. 고대 로마나 스웨덴 등지에서는 보호의 의미로 쓰이는데, 주술이나 부적에 쓰이는 붉은색도 이런 선에서 이해된다. 또 빨간색은 지휘자, 특권을 표시하거나 혹은 전투, 죽음, 피를 상징하기도 한다. 저자는 위와 같은 식으로 세계 각지에서의 나타난 색의 쓰임새와 의미를 얘기한다. 각 장의 말미에는 색을 얻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 관한 이야기는 “흰색”에서 조금 다루어지고 있다. 19세기초, 왕실의 연이은 국상으로 3년간 흰 상복을 입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색에 대한 기본적인 의미와 상징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같은 색일지라도 지역, 민족,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쓰인 예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색에 대한 세계의 여러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어 흥미로운데 깊이 들어간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쉬운 점도 몇 가지 남는다. 색에 대한 섹션만 나뉘어 있을 뿐 한 가지 색에 대해 시대순이나 지역별로 다룬 것은 아니어서 전체적으로 체계적이지는 않다. 색의 역사에 대해 전체적으로 훑은 느낌이다. 예를 들면, 보라(자주색)의 경우 비잔틴시대에는 번성하다가 갑자기 사라졌다는데, 그 이유나 배경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어 조금 아쉬웠다. 아마도 색에 대한 일반론을 다루다보니 그런 듯하다.

 

책의 전체적인 느낌은 예쁘기도 하고, 옆에 두고 참고할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용 자체가 흥미롭기도 하거니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색의 이면적 의미와 다양한 문화적 수용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색,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