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된지 오래됬다는 점과 그간 일본영화가 국내에서 줄줄이 흥행에 참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동물이 주연인 영화가 갖는 기존의 한계성 때문에 어쩌면 이영화는 수많은 편견속에 그저 그런 아이들이 보는 수준의 비디오용 영화쯤으로 당신에게 오인(난 오인이라고 확신한다!)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하치이야기는> 당신이 1년을 기준으로 할 때 손으로 꼽을만큼 쉽게 만나기 어려운∼ 감동과 작품성을 온건히 갖춘 영화계의 희보(喜報)와 같은 영화이다.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포스터를 가득메우고 있는 <하치이야기>의 강아지를 볼 때 우리는 자칫 어린 진돗개가 아닌지 하는 의심을 품게 되지만 사실 이 포스터의 주인공인 강아지는
실제로 일본 시부야 역에서 10년의 시간동안 꼼짝도 않고 주인을 기다린 충견 하치이다.
주인공 하치는 일본의 순종 아키다견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1923년 11월 10일 아키타현에서 태어난 아키다 순종견 하치가 이듬해 1월 14일 동경 제국 대학 우에노 선생의 집으로 옮겨지게 되고, 우에노 선생의 지극한 사랑을 받다가 1925년 5월 21일 선생이 뇌출혈로 돌아가신 이후 1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저녁 시부야역에서 선생을 기다리다가 1935년 3월 이른 아침... 새벽눈을 맞으며 차갑게 죽어간 사실을 소재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한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라니 TV <세상에 이런일이>에서 다루어질만한 소재쯤이겠군 생각하실수도 있겠지만 이영화는 단순히 동물과 사람사이에 일어났던 실화를 소재로 관객의 눈물샘만을 자극하려고 작정하고 달려든 영화가 결코 아니다.
(사실 만만히 그정도만 예상하고 극장에 들어갔다가는 온 극장의 관객이 누가먼저랄것도 없이 하나가 되어 큰소리로 한꺼번에 울어버리는 황당한 경우를 만나게 되고 말 것이다!)
<하치이야기>는 1983년 코유야마세이지로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로 실화를 영화화하는 그 재구성 이상의 깊은 의미와 격이 있는 영화로서 동물영화가 갖고 있었던 작위적인 눈물과 웃음을 호소하는 딜레마를 훌쩍 뛰어넘어버린 수작이다.
시집을 가버린 외동딸의 빈자리를 메꿔주듯 우에노 교수에게 하치는 언젠가부터 강아지 그 이상의 존재로 변해버린다. 비오는밤이면 비를 맞고 떨고 있을 하치를 생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햇볕이 좋게 드는 오후에는 하치를 눕혀놓고 벼룩을 잡아주기도 하고..심지어 목욕까지 함께하는 우에노 교수의 하치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그러나 조금은 별나보일만한 이러한 우에노 교수의 하치의 사랑법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은 (가족이래봐야 부인뿐이지만)우리가 가진 예상과는 조금 다르다. 그의 사랑에 대한 어떠한 비난도 편견도 없이 말하지 못하는 딸의 빈자리를 허전해할만한 우에노 교수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건지..그렇게 모두 하치와 그의 사랑을 지켜본다. 언젠가부터 교수의 사랑을 느끼는 하치는 그의 출근길과 퇴근길에 늘 함께한다. 그를 역에 배웅하고 또 그가 퇴근할시간에는 역에 마중을 나가는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부나 사람이라해도 한번은 어겼을 그 약속(물론 스스로 정한것이겠지만)을 하치는 어기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하치가 교수에게 보여줄수 있는 유일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해주는 그에게 하치가 해줄수 있는것이라고는 그러한 출퇴근의 배려와 기다림... 그것뿐이라는 것을 하치는 슬퍼했을 것이다. 이러한 하치의 사랑과 충성은 그러나 오래가지 못한다. 강의중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우에노 교수의 죽음...그날 왠지 평소 짖지 않았던 하치는 하루종일 마당에서 울어댄다. 우에노 교수의 부인은 다른날과 다른 하치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아무것도 모른채 조용히 하라고 꾸짖지만 이미 하치는 주인의 죽음을 느낀것인지.. 짖지 않던 울음과 소리로 앞으로 있을 일들을 예견한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다면 개에게는 견격이 있어!"라는 조금은 생뚱맞은 말도 서슴치 않으며 자신의 모든 사랑을 아낌없이 주었던 우에노 교수,,, 그가 떠나간 곳에 하치는 외로이 남겨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