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메 그린다                                    

전경일 지음│다빈치 刊

 

고백하건대, 우리네 화가들보다는 서양화가들을 더 많이 알고 있는 현실이다. 내 탓이
라기 보다 우리네 미술 교육이 그렇다. 인상파니 고전주의 서양의 미술 사조는 외워싸
게 교과서가 편제돼 있잖는가.  재작년이던가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긴 줄을 서서 한
국화에 매료됐고 유홍준 교수의 완당평전 두 권으로 조금은 안목이 생겼다마는, 이 책
이 다루는 안견 김홍도 장승업 등의 그림세계와 디테일에 심취해보는 호사도 누린다.

 

툭 하면 치밀고 올라오는 태풍처럼 서양미술의 폭우에 질릴 즈음에 가끔은 썩 잘된 수
묵화로 샤워하는 기분이란 마치 힐링의 기분마져 든다. 한결 정제된 마음으로, 그리메
젖어든다. 문자향 서권기에 시서화 문사철이 넘쳐나는 우리네 '세한도' 그림 같은 삶은
차라리 미학이다. 대대로 내려오는 아름다운 마풍양속이 배어난 전통 미학이란 말이다~

 

말미에 하는 얘기지만 책에 실린 그림들이 하나 같이 왜소함에 몹씨 불만스럽다. 우리
네 전통적인 여백미 추구도 아니고 처연하게 절제된 미니멀리즘의 현양도 아닌 데, 왜
그리 작달마하게 게재했는지 편집자에게 따져 묻는다.  몇 페이지 더 불어난다고 제작
비가 더 느는지는 몰라도 군색한 변명이라도 듣고 싶다.  

 

공제 윤두서의 자화상은 볼 때마다 치열함을 느끼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다. 윤두서
는 남인이다. 당시의 사색당쟁도 치열했거늘, 남인의 형편으로는 그것이 전부였다. 어
부사시가로 고래로 유명한 윤선도는 그의 증조부이며 다산 정약용은 외증손이다. 참
대단한 사대부로 쟁쟁한 명문 집안이다. 윤두서가 사사로이 사사하는 선생도 없이 '마
상처사도' 라든가, '돌 깨는 석공' 같은 선비화는 언제 다 그렸노.

 

소치 허련의 지화상은 그의 애닲은 스승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같이 삭막하지만 고졸
한 분위기이며 느낌 그대로다. 최북 칠칠은 불같은 성격이다. 자기 한 눈을 스스로 찔
러서 애꾸눈이 되어 안경을 쓰고 다니는 자해 행위는, 마치 빈센트 반 고흐가 자기 한
쪽 귀를 스스로 짤라내는 것과 일맥이 상통하고 있다. 예술혼의 시퍼런 광기는 동서고
금을 막론하고 요절에서 빛이 나는가 보다.

 

저자 전경일의 저서들은 그리메에 그리 듯 구름에 달 가듯이 그림에 이야기를 입힌다.

그레메그린다, 전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