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VS 율곡                               

김영두 지음 역사의아침 刊  

아득하게 느껴지는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 층계 벽면에 걸린 두 분, 퇴계와 율곡의 초상화를
보며 다녔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훌륭한 분들이라는 막연한 존경심으로 치켜 올려다
보던 분들이다. 그 분들이 우리나라 성리학(내용도 전혀 모르지만)과 정치의 쌍벽을 이룬다
는 역사를 알 게 된 건 그리 오래지 않다,

어쨌거나 황송하게도 시중에 나도는 돈에서나 뵙던 그분들의 디테일을 심도있게 읽으니 한
결 새롭다.  두 분의 우열을 가르는 건 도박에 목숨거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못 된 버릇이며
불경스럽기도 하거니와 전혀 도움이 안되는 우둔한 일이다. 그러나 정치적 소신은 다른 것
이니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지는 독자들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면 된다.

그러나 두 분의 학문에서 주창하는 방법론의 차이를 비교우위 측면에서 살펴 볼 수는 있다.
예컨대, 이 책에서 다루는 퇴계의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와 율곡의 '만언봉사萬言封事' 는
두 분이 비록 35 년여의 차이는 나지만, 일가를 이룬 성리학자로서 동시대 임금인 선조에게
국가 운영의 이념과 방책을 제시하는 전형적인 형식으로 상소문들이다. 봉사란 주자학의 비
조인 주자가 남송의 효종에게 '무신봉사'를 올린 뒤로 내려오는 정치행위의 극치라 하겠다.

퇴계가 그 유명한 사단칠정 논쟁을 벌인 상대는 율곡이 아닌 고봉 기대승이다. 또한 율곡이
우계 성혼과 사단칠정 논쟁을 벌였으나 정작 두 분은 이러한 즈제로 직접 의견을 주고 받은
적이 없으니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독자는 理가 뭔지 氣가 뭔지도 모르는 무지랭이다. 서양
의 연역적인지 귀납적인지도 아리송한 문제들로 다가온다, 그저 외웠던 기억이 부끄럽지만.

그러나, 율곡 이이가 허엽과 논쟁을 하는 중에 '옛글에 이르기를 몸으로 가르치면 따르고 말
로 가르치면 시비한다 했으니. .'하는 대목에 고소를 금치 못한다. 옛 선현들도 또 옛 선현들
의 가르침을 새겨 듣고 쓰는 모양이 얼마나 새롭고 아름다운가, 일컬어 온고이지신이라던가.

퇴계가 귀거래를 할 때에 당대의 학자들이 우르르 따라나서 양주에서 봉은사에서 같이 묵으
며 대학자의 귀향을 배웅했다는 장면이 데자뷰로 눈에 선하다. 하여간 문자향 서권기에 시서
화 문사철의 거두들인 퇴계와 율곡을 다룬 이 책은 가정상비책으로 두고두고 뒤져보며 서생
적으로 접근하여 학문적, 지적 성숙도를 키워 나가야잖을까.

퇴계, 율곡, 만언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