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등척기 /           

안재홍 지음 정민 풀어씀 해냄 刊

민세 안재홍 선생은 요즘의 휘황찬란한 등산복과 기능성 장비에 비하면 거의 원
시적이고 열악한 복장과 신발로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섭렵하고 그 기록을 남긴
문자향 서권기가 물신 풍기는 책이다. 그에 비하면 근교의 야트막한 산을 다니면
서 거품이 틀림 없는 고가의 등산복으로 호들갑을 떨며 다니는 등산 세태가 부끄
럽기 그지 없다.

안재홍 선생의 백두산 등척기는 고루한 한문투로 일반 독자들은 접근하기가 극도
로 이해난理解難 하지만 다행히 한국 한문학을 전공한 한양대학교 국문학 전공인
정민 교수의 해제본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네 한시와 고전 산문을 현대적 의미로
풀어 쓰는 작업에 이력이 난 분의 해설로 수월하게 읽을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민족분단으로 인해 중국을 거쳐서 올라가는 반쪽짜리 백두산 등정이 아니고 뜨거
운 민족 정서를 가진 모든 이의 로망인 오리지날 백두산 등척은 후세에 사는 우리
에게는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스토리텔링이 화두인 시대에
정민 교수의 풀어 쓰기는 민세 선생의 고졸한 필치를 그대로 지닌 채 가슴을 벅차
게끔 전해 준다. "기구하고 쇠미한 비문어체 시대에 이 못난 내가 무엇으로 이같이
한 없는 홍복이런가" 싶다.

오비이락인지는 몰라도, 백두산 등척기를 읽는 즈음에 중앙 일간지가 제 1회 民世
賞을 제정하였다. 민족운동가로 언론인으로 역사학자로 20세기 우리 역사에 뚜렷
한 족적을 남긴 민세 선생을 기리고자 한다며 제1회 수상자로 두 분을 선정 하였다.
사회통합 부문에 함께 조계종 송월주 스님을 선정했고 학술연구 부문에 서울대 국
사학과 교수와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정옥자 교수를 선정 했다.

안재홍 선생의 아호인 '민세'는 민중의 세상, 민족에서 세계로, 세계에서 민족으로라
는 뜻으로 암울한 일제강점기에도 높은 기상을 품으신 민족운동가이며,  그 시대 선
각자 대부분이 국수적 관심을 기울인 조선상고사 부문의 학자이며 언론인이였다. 일
본제국주의가 식민사관으로 평가절하했던 조선 후기 역사를 재정립하는 데, 주력해
왔고 해방 후의 극심한 이념 대립의 혼란 속에서도 민족의 통합을 주창한 민세 안재
홍 선생의 민족혼을 기리는 데 아주 제격인 후학을 선정한 셈이다.

이 백두산 등척기는 인문학적 가치와 시서화 문사철로 점철된 문집으로 두고두고 볼
책이다. 년말이 다가오는 싯점에서 망외의 소득을 안겨 준 빈티지 문어체 채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