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경 지음 창해 刊

이 책은 대체로 선선한 내용입니다.  글씨가 크고 행간을 여유롭게 배치해 읽기가 수월
하다는 장점외에도  와닿음이 충실해 속은 기분이 전혀 안드는 리포트같은 기행문이다.
그러나 무게감이 목넘김이 좋은 음식처럼 슬쩍슬쩍 넘어가게 쉽게 내버려 두질 않는다.

여타의 허접한 예능성 파리 여행담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심층분석은 군계일학이다
정부기관  출입기자 출신의 닳고닳은 기자의 해석력과 노련한 아줌마 필치로 파리를 해
부하는 임상적인 내러티브가 이렇다할 거부감 없이 (설익은 기행문으로 여기던. .) 학구
적인 자세로 읽는 기분도 낼수 있다.

방문지의 예비지식도 없이 눈으로 보는 감상만 늘어놓는 기행문 따위에 질렸던 기분을
해장 시켜준 파리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잘도 들춰 내 속삭인다. 누드 모델 출신의 재혼
여인이 퍼스트 레이디가 돼도 별 저항이 없는 레지스탕스의 본고장이 프랑스이고 파리
라이고 보니 그들의 평등한 자유의식과 사유와 철학과 방종에 혀를 내두른다.

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그러나 당신이 그 견해를 고수할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
다는 볼테르의 신파조에 가까운 용단에 걔네들 서양철학의 우위를 인정한다. 그러나 우
리들 이보경 아줌마는, 파리의 교육 제도가 우리와 비슷해서 반면교사로 삼아도 좋다는
등, 조곤조곤 곱씹어 볼 대목이 적잖다며 세심한 부분의 소개도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페미니즘과 상반된 여성관이 아무렇지도 않게 존재하는 나라라고 냉소를
던지길 주저하지 않는다. '제 2의 성'으로 돌풍을 일으킨 시몬 드 보바리는 철학자 폴 사
르트르와 결혼도 없이 장기간 계약 동반자로  동거한 자유로운 삶은 대표적  페미니즘의
발로로 든다. 게다가 현직 법무장관이 유력 인사의 아이를 임신해서 배가 불러온 채 사는
것도 프랑스의 성적 평등혁명에 대입해서 푼다. 자기신체 결정권은 모든 자결권의 주춧
돌이란다. 타당한 말씀이며 프랑스적 사유체계라고 동의하며 그 분석력에도 감탄한다. 

프랑스는 오랫동안 성속의 갈등과 좌우 갈등이 뒤얽힌 직조물 같은 사회지만 아직도 여
성이 바지(판타롱)를 입으려면 경찰에 출두해서 허가를 취득해야하는 나라라고 전혀 눈
치도 못 챈 사실도 알려 준다. 과연, 바스티유 민중 혁명의 원천보유국 프랑스가 맞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