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전사들.

잘 모르던 부분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참 흥분되는 일이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되는 것이고 내 의식의 접경을 더 넓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조각에서 출간한(2008) [초원의 전사들]을 만난다. 원제는 Warriors of the steppe: A Military History of Central Asia 정확하게 해석할 순 없지만 영어 제목으로 보건데 표지의 그림을 장식한 이들은 내 짧은 지식으론 몽골족일 거라는 예상을 해 본다. 서양화에서 본 말들보다는 훨씬 몸집이 작은 말을 타고 방패를 들었거나 화살을 쏘는 사람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아마도 몽골족이거나 또는 다른 동양의 전사들일 거라는 생각이 책을 본 처음의 느낌이다.

저자 에릭 힐딩거는 변호사로 일하면서 현재 미국 미시간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중앙아시아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고대와 중세의 전쟁사에 관심을 두고 있는 저자는 13세기 교황의 사절단으로 몽골을 방문한 후 카르피니가 쓴 복명서 [몽골 여행기]를 영어로 옮겼다.

특히, 이 책 [초원의 전사들]은 사학자 특유의 학문적 고찰보다는 보다 쉽고 직접적인 설명으로 2,200여 년 동안 지속된 중앙아시아 민족의 역사를 전투 중심의 관점에서 기술한 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책은 빈곤과 고통 속에서 단련되어 뛰어난 전사의 힘을 발휘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은 거친 환경을 이겨내고자 강인하고 빈틈없는 전사로 단련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땅과 인접한 이웃 국가의 정주민들을 상대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뚜렷하고 독특한 방식의 싸움을 하는 전사로 만들어졌는데, 그들이 바로 유목민들이었다.(page8. 서장)

지형적으로 대초원은 유라시아의 심장부를 차지하며, 중국 국경과 면한 지역, 중앙아시아의 전 지역, 우크라이나,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북쪽으로 흑해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가지 포함된다. 가장 서쪽은 헝가리 평원이며 현재의 국경으론 중국, 내몽골, 몽골, 러시아, 카자흐스탄, 투르키??, 아프가니스탄, 헝가리 등의 일부 또는 전체가 포함되는 지역이다. 지역도 광대하고 지형도 동일하지 않다.

기후는 대체적으로 혹독한 편이라 기후가 좋다고 분류하는 서쪽 지역도 혹독하기 이를 데 없으며 대초원의 중앙지역은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가 섭씨 80도까지 벌어진다.

유목민이란 여름과 겨울 목초지 사이에서 자신의 부족이나 이웃 부족들과 서로 교류하며 일년에 두 번씩 집을 옮기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대부분 생활의 원천으로 동물 목축을 하였기 때문에 목초지를 찾아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유목민들이 농사를 경작했던 증거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농사에 전념하지 않았으며 차츰 ‘순수한’형태의 유목민에 가까워지고 이에 따라 정주민과의 교역이나 또는 정주민을 약탈하는 것으로 생존을 이어 나갔다. 때문에  이들의 습격 기술은 날로 향상되고 성공을 거두었으며 때문에 유목민들은 그나마 유지해오던 농업활동을 포기하는 경향을 보였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은 한곳에 정착해 살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게르에서 살았다. 유목민들은 조랑말을 탔으며 이 말을 탄 채 강력하고 효과적인 무기인 활을 사용하여 싸웠다.

유목민들은 작은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음에도 때때로 서로 결합하여 주요 부족의 이름을 취한 부족연맹을 결성했다. 부족의 지도자들은 자신이 따를 수 있는 훌륭한 족장을 만나면 부족을 기꺼이 합쳤는데 이때 언어의 장벽은 큰 장애가 아니었다고 한다. 작은 부족이 연합해 큰 군대를 만들고 군사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실질적인 규모가 더 커지기는 했지만

이들의 정치 조직은 원시적이라 정치적으로 짐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대부분이 내부 분열로 갈라져 있으나 그것을 결합시키는 강력한 구조나 조직이 없는 국가를 의미하는 ‘타타르 국가’였기 때문이다.

유목민들이 적은 인원으로 그보다 훨씬 많은 인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유목민들은 순전히 경제적인 목적을 위해 침입하고 습격했기 때문에 그들을 따라잡거나 그들의 공격목표를 예상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했다. 둘째, 남성 인구 중 상당 부분의 사람을 전쟁에서 싸울 전사로 소집할 수 있었다. 셋째, 유목민들이 정주민들에게 불러일으킨 공포와 혐오감. 마지막으로 유목민적 생활양식 때문에 조직적인 방법으로 야영지를 옮기고 이동했다는 것이 정주민들과 차별된 장점이었다. 이런 유목민들의 전투에서의 공통점은 포위, 엄습, 거짓후퇴, 매복 공격이며 말을 타고 복합궁을 이용해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초원에서 활약했던 많은 부족이 등장한다. 스키타이족과 사르마티아족, 훈족, 아바르족, 불가르족, 마자르족, 셀주크족, 크림 타타르족, 만주족, 그리고 특히 많은 부분이 몽골족에 할애되어 있다.

13세기 몽골족이 세력을 얻기 시작할 때 그들의 수는 백만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60년, 몽케 칸이 사망할 무렵 몽골족은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제국을 보유했으며 유목민 제국으로서는 상당히 긴 시간인 3세기 동안 국가가 지속되었다. 몽골의 흥망을 저자는 주로 칭기스 칸(모든 것을 포용하는 지도자라는 의미)으로 더 많이 알려진 테무친의 역사와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범위 내에서 칭기스 칸은 어떤 사람이고 몽골은 어떤 나라인가? 고려 시대 우리나라를 샅샅이 유린했던 민족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 사실 몽골이나 칭기스 칸에 대해서 자세하게 공부를 해본 적은 없었던 거 같다. 칭기스 칸의 태어남부터 어린 시절 그리고 그가 힘을 가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들 과 권력에 다가서는 과정, 영토를 넓혀나가는 과정과 그의 자손들, 그가 정복한 나라들, 그의 사후의 나라의 분열까지 몽골의 역사를 총 망라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유럽사를 공부하면서 쉽게 이해가지 않았던 유럽사에 등장하는 ‘한국’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비로소 확실하게 공부하는 기회가 되었다.

만주족에 대한 설명에서도 마찬가지로 매우 상세한 기록과 서술을 하고 있다. 몽골이 우리의 고려시대였다면 만주족이 세운 원나라의 흥망성쇠는 근세조선의 일이라 더 쉽게 이해가 갔다.

일상적인 역사 서술보다는 지은이 소개에서 이야기 했듯이 전쟁을 중심으로 서술한 것이기에 유목민들의 생활습관이나 문화에 대한 것은 많이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유목민들이 생존의 방법으로 택한 것이 약탈 또는 습격으로 불리는 전쟁이었기에 결국 전쟁도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도입 부분의 말과 화살등 전쟁도구에 대한 부분은 정말로 어려웠다. 실제로 조랑말을 본 적도 없고 활이나 창 방패 갑옷 같은 것들은 박물관에서 대충 흩어보기는 했지만 자세하게 알지 못하는 부분이라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화살촉 하나에도 많은 역사가 담길 수 있다는 걸 새롭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