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종사들.

삼바라밀-망설. 망안. 망이에 현혹되지 않는 지혜.(망설妄舌-교만한 마음으로 진실치 않은 말을 하는 것 망안 妄眼-부정적인 눈으로 다른 사람과 사물을 보는 것 망이 妄耳-달콤한 말에 유혹돼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
(page 33 종산 대종사 편)

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 일상의 끈을 내려놓고 삼바라밀의 지혜를 따라가 보았다. 한국불교기자협회는 1989년 창립된 불교계 매체 기자들의 모임이라고 하는데 저자 소개를 보면서 불교매체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엔 목차에 있는 순서대로 책을 읽었다. 솔직히 말 한다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종사님들의 말씀의 깊이가 다른 것이 아니고 그 분들에 대해 쓴 글의 깊이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뒤에 실린 이 책의 저자 목록을 참고로 저자들의 나이별로 책을 읽어보았다. 저자들의 나이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연령으로 다양했지만 대부분은 6,70년대 출생한 분들이 많았다. 굳이 내가 나이를 들먹이는 이유는 사회적 능력이나 재기만으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있더라는 것을 말 하고 싶어서이다.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 바로 세월이라는 바람에 삭고 다듬어진 깊이를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면 내가 쓸 데 없는 부분까지 너무 꼼꼼하게 책을 읽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나라 불교계의 큰 스님들을 책으로나마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삼천배를 해야만 뵐 수 있는 분도 계시니 나 같은 게으름뱅이는 꿈도 못 꿀 일이 아닌가. 더군다나 대처 한 복판의 가람에 계신 스님들은 몇 분 안 계신 거 같다. 대부분이 산 넘고 물 건너 훠이훠이 가야하는 심산구곡에 안거하고 계신 분들이라 어차피 나 같은 사람은 뵈러 갈일이 생길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이 책의 저자들이 풀어쓴 큰스님들의 말씀이 새록새록 가슴에 새겨진다. 이 책을 통해서 도심 한 복판에서 편안히 큰 스님들의 말씀을 만나는 호강을 누릴 수 있었다.

“기도는 자신의 일을 자신이 해결하고자 하는 행위야. 자신이 수요할 수 있는 가르침을 세우고 지키는 것이지. 스스로 뜻을 세워 자신의 위대함을 발현해야 부처님도 힘을 주셔. 원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 기도를 많이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아만我慢만 늘어나게 돼. 가장 훌륭한 사람은 스스로 힘을 얻는 사람이야.
(page91 보성 대종사 편)

“신발을 흐트러지게 벗어놓는 사람은 가지런한 신발을 신을 수 없어. 신발 벗어놓은 걸 보면 그 사람이 매순간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지. 신발 하나도 똑바로 벗어놓는 게 마음공부야. 발밑을 잘 살피라는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냐. 자세가 달라져야 마음도 바뀌는 거야. 모든 것은 다 사람이 하는 거야. 사람을 가르치지 않고 결과만 바라게 되면 속이 텅 비게 돼.(page95 보성 대종사 편)

다른 사람들도 그러리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모든 책을 내 입장에서 받아들인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내가 숨 쉬고 있는 현실을 옆에 앉혀두고 책을 만나면 좀 더 책의 내용이 좀 더 쉽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이해가 된다. 물론, 이 책도 그렇게 읽었다. 살림 사는 주부로서,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일을 가진 직업인으로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시인으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모든 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나타났다가 사라져 갔다.

보성 대종사 편을 읽을 땐 가족 속에서의 내 자리를 되짚어 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도 나의 얼굴을 왜 그리도 많던지 그런 얼굴들을 모두 예쁘게만 가지고 살 순 없겠지만 단정하게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수행자는 사회의 정신과 삶 그리고 문화를 이끄는 정신적인 지도자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올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중생이 어려울 때 바른말을 해야 하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세상을 바로 세우고 중생을 바로 세우는 일에 수행자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page255 설정 대종사)

설정 대종사의 말씀뿐만이 아니더라도 책 속의 모든 큰스님들이 말씀하시는 수행자의 자세에 대한 언급은 한 자도 가벼이 지나칠  수 없었다. 시를 쓴다는 것이야말로 끊임없는 수행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데 특히, 설정 대종사의 말씀 부분에서는 이즈음 차고 넘치는 시인과 시가 생각나기도 했다. 올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중생이 어려울 때 바른말을 하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어야 할 의무는 수행하시는 스님들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시인들의 몫은 아닌지 나부터도 반성에 또 반성을 해가며 읽었다.

“항상 나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佛治身經>에 ‘욕교여欲敎餘 선자교先自敎’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남을 가르치려면 먼저 자신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 자신의 수행을 먼저 챙겨야 남도 가르칠 수 있다는 겁니다.”(page367 명성 명사 편)

항상 나 자신을 살펴야 한다는 명성 선사의 말씀은 내가 하고 있는 일들과 겹쳐서 마음에 가라앉는다. 남을 가르치려면 자신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말은 가르치는 동안에도 결코 배우는 걸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소리가 아닐까. 누군가에게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어렵고 무서운 일인지를 많이 깨닫게 되는 이즈음이다 보니 잊히지 않는 문구가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구절마다 밑줄을 긋고 따로 메모를 하기도 했다. 책을 끝내고 나니 나도 모르게 마음공부가 참 많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다.

다만, 아쉬운 것은 비구니 큰 스님은 광우 명사, 묘엄 명사, 명성 명사 세 분 밖에 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비구니스님의 숫자도 비구스님들의 숫자에 비해 적지 않을 텐데 많은 부분 할애되지 못 한 것이 내가 여자라서 그런지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더군다나 비구스님들께는 종사 다음에 대종사라고 하는 극존칭이 있는데 비해 비구니스님께는 명사라는 존칭이 되고의 반열에 오른 경우의 호칭이다. 이 점도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점이야 책의 내용과 결부시킬 수는 없는 부분이라 이쯤 접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