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길, 우즈베키스탄을 걷다

이 마을은 사막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 중에 일부는 어쩌면 평생 이 마을을 떠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일생 동안 사막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다. 며칠 동안 사막을 걷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지고 멍청이가 된 기분인데, 일생 동안 사막을 바라보며 살면 어떤 느낌이 들까.

하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평생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를 벗어나지 못한다. 사막을 바라보며 사는 것과 도시 건물들 속에 묻혀 사는 것, 이 두 가지는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page111)

토요일이다. 그리고 지금은 시험시즌이다. 나처럼 아이들 성적으로 밥을 먹고 살아야하는 과외선생에게 시험시즌은 그야말로 총알이 날아다니고 지뢰가 널린 전쟁터 같다. 아이들도 나도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서 사력을 다 한다. 그러니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휴식이라곤 꿈도 꿀 수 없다. 시험만 끝나면...시험만 끝나면...아이들도 나도 시험을 기다린다. 그리고 기다리지 않는다.

이번 시험이 끝나면 우린 꼭 어딘가에 다녀오기로 약속을 한다. 이번엔 천안을 지나 온양까지 가는 전철을 타보자고 온양역에 내려 현충사에 가보자고 약속을 한다. 한 녀석이 온천욕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지 뭐. 우리 거기서 목욕도 하고 오자. 이런 생각만으로도 아이들도 나도 이 무더위와 시험 스트레스를 이겨낼 힘을 보탠다.

그러니 떠난다는 것은 늘 설레임일 수밖에 없다. 그 가슴 두근거림은 늘 그립고 또 부딪힐 때마다 새롭고 신선하다. 평생 익숙해질 것 같지 않은 감정. 바로 떠남을 준비하는 마음이 아닐까? 그리하여, 나는 또 이 책 ‘오래된 길, 우즈베키스탄을 걷다’의 저자 김준희 같은 사람을 억수로 부러워하는 건가보다. 억수로 부러워하다 배앓이를 하는 건가보다.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스탄’이라는 말이 붙는 나라들은 이슬람 국가라는 아주 일반적인 상식으로만 보는 나라. 저자는 우즈베키스탄을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로 그곳이 고대 실크로드의 중심지이면서 그 가운데에 키질쿰 사막이 펼쳐져있어 도보+사막+실크로드라는 세 가지 주제가 합쳐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즈베키스탄 현지인들을 ‘붙임성 있고 친절한 현지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의 여행이 매우 인간적이었으리라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이 책은 우선 표지부터 마음을 붙잡는 매력이 있다. 실제로 보면 우리나라의 청명한 가을하늘처럼 깊을 것 같은 파란 하늘을 이고선 정갈한 이슬람 사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비취색의 돔이 마치 보석처럼 빛난다. 뒤표지의 낡은 운동화 한 켤레. 저자가 여행 내내 신었던 그 운동화는 뒷꿈치며 깔창까지 삭을 대로 삭아 나달거리지만 영광의 상처를 안고 돌아온 장수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엔 많은 사진들이 실려 있다. 책의 내용에 사실감을 불어넣어주기도 하고 친절한 해설서 역할을 하기도 하는 사진들도 하나같이 저자가 직접 촬영한 것일 터, 프로의 냄새가 나지 않아서 더 정겹고 따뜻하다. 사진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저자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의 도시를 걷고 사람을 만나고 따뜻한 인정을 느끼고 낭패를 당하고 그리고 사막을 건너 사마르칸트와 타쉬켄트 까지 여행을 한다. 진솔한 그의 글과 사진덕분에 함께 사막의 밤을 새우고 사막의 먼지를 들이마시고 사막의 열기를 느낀다. 책을 읽는 즐거움과 함께 보는 즐거움에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책이다. 

아들이 집에 와있다. 지난 몇 달간의 객지 생활에서 한결 어른스러워졌다. 며칠 열심히 다니던 아르바이트를 접고 집에서 처음으로 쉬는 날인데 하루 계획을 물으니 집에만 있을 거라고 한다. 막상 집에 왔지만 친구도 없고 딱히 갈 데도 없고 무엇보다도 감동이 없어서 춘천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이야기 하는 녀석이 조금 섭섭해지려고 하지만 나름대로 무엇인가 끊임없이 시도해보려는 녀석이 대견스럽다. 여행을 다녀오겠느냐고 슬쩍 의중을 떠본다. 여행경비를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 엄마한테 손 벌릴 생각은 아예 안하는 것 같다. 아들에게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엄마도 우리 아들이 이 책의 저자처럼 그렇게 훨훨 날아다니기도 하면서 그렇지만 내 자리도 확실하게 잡아두고 사는 그런 사람으로 살길 바란다고.

열심히 생활하고 또 열심히 나다닐 수 있다는 것은 얼마만한 능력과 에너지가 필요한 것일까? 두 가지를 모두 병행한다는 것은 또 그 두 가지를 전부 잘 해낸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열심히 생활했으니 훌쩍 떠날 수 있을 거 같은데 대부분은 그 생활에 발목을 붙잡혀 주저앉고 만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더 부럽고 맘에 든다. 정말 멋지게 사는 젊은이라는 생각. 그러니, 주저 없이 아들에게 권해줘도 괜찮은 책으로 이 책을 꼽겠다. 더불어 나도 책을 읽는 내내 잠시 젊어지는 느낌. 그리고 이번 시험시즌이 지나면 꼭 어디든 다녀오리라는 다짐을 해둔다. 누구는 그 먼 이국땅 1200Km도 걸어서 여행을 했는데 그깟 하루도 나를 위해서 시간을 못 낸다면 안 되겠지? 

내가 이 사막에서 말라죽더라도 아마 500년 동안은 아무도 그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사막을 보존해야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바라보면서 인간이 느낄 외경과 두려움 때문이다. 인간이 모든 자연을 정복할 수 있는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삭막한 사막을 바라보면서 깨닫게 된다.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는 황량한 자연이 그래서 필요하다. 나를 부른 것은 사막의 열기다. 메마른 사막의 뜨거운 열기가 이미 식어버린 내 가슴에도 불을 지르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page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