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길을 묻다I

하필 이 책을 읽고 있던 시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었었다. 연일 뉴스와 포털 사이트의 뉴스란을 채우던 대통령의 [돈]에 대한 무수한 이야기들 때문에 조금 지쳐있었고 그리고 그렇게 매일 마주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지겨워지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충격이 더 컸던 것일까? 이번엔 추모와 장례식 절차를 같은 지면과 같은 화면으로 연일 만나게 되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었다.

나는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가? 라고 물어본다. 물론, 예전의 그 어느 시절보다도 더 열심히 살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내가 열심히 사는 것보다 한걸음 먼저 삶은 갈수록 녹녹해지질 않고 가파르게만 변해간다는 느낌이다. 열심히 사는 것만큼 삶의 질도 향상되어야 하는 게 당연지사일 텐데 돌아보면 삶의 질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떨어졌다. 영화를 본 지가 언제인지 가족들과 여유롭게 여행은커녕 외식을 해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들이 나 혼자만의 일이라면 다행이다. 그것은 내가 남들보다 덜 열심히 살았다는 소리니 조금 더 노력하면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 평범한 소시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 내가 만나는 일상들은 그런 절망감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겉으론 말짱해 보이지만 조금 이야기를 나눠보면 모두가 다 힘든 시절을 죽어라 안간힘 쓰며 넘기려 발버둥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책 ‘대한민국 길을 묻다’에 더욱 더 관심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최고의 석학들의 특강을 엮은 책이니 필진에 대한 신뢰감까지 더해져서 이 답답한 현실에 대한 답을 구해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의 필진들은 신문의 사설이나 아님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이미 낯익은 분들이다. ‘위기의 세계 경제, 한국형 전략만이 살 길이다.’의 서울대학교 송병락 교수.

‘한반도 선진화를 위한 세 가지 조건’으로 창조국가, 조화사회, 통일한국을 이야기 하는 서울대학교 박세일 교수. ‘미래, 창의적 인재로 승부하라.’의 이장무 서울대학교 총장. ‘도시, 새로운 미래를 설계한다.’의 김석철 도시건축가 등 대단한 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이 책에서 만나게 된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우리의 나아갈 길을 짚어주는 분들이 사회 각처에 있으니 이 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우린다면 최소한 주저앉는 나라는 안 될 거 같다는 안도감과 ‘그런데 왜 아직도?’ 라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에겐 위기가 올 때 더 강해지는 DNA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인에게는 위기가 기회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위기가 올 때마다 우리나라는 도약했습니다.’(page227)

송병락 교수는 종합성, 융통성, 창의성, 모험심, 끈기를 한국인의 기본 성격으로 들고 있다.

‘한국은 한 세대 안에 1.2.3차 산업혁명과 선.중.후진국 생활을 모두 경험해본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이 같은 경험이 훌륭한 리더십과 결합하면 제2의 경제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글로벌 경제 전쟁에서 이기려면 우리에게 맞는 전략이 필요합니다.(page35)

괴짜교수로 통하는 서울대 이면우 교수의 이론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국가가 발전하려면 국가 고유의 경영철학이 있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그는 창의성 이론 즉, W이론을 강조한다. 그 중 특히 강조하는 거 세 가지. 첫째, ‘보이는 것을 포기하고, 보이지 않은 것을 추구하라.’ 둘째, ‘변할 것과 변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구분하라.’ 셋째, ‘빠른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느린 파문을 주목하라.’  결국 이면우 교수는 강의의 제목처럼 ‘틀을 깨면 길이 보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 나는 얼마나 많은 틀 속에 갇혀서 살고 있는지를 문득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아주 조그만 일상의 사소한 틀에서부터 사회와 국가에 대한 나만의 고정관념과 잣대들. 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른 채 그저 고집을 부리다가 굳어져버린 그 틀들을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깨버리는 시도를 하기로 작정해본다. 더디겠지만 어느 순간 가속도가 붙길 기대하면서.

박세덕 서울대 교수의 ‘한반도 선진화를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읽고 읽는다. 책장을 앞뒤로 넘겨 가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이 부분에 머물렀다.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국제적으로 선진화가 된 나라를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면,

박교수는 경제적 선진화의 요건으로 중산층이 두터운 항아리 형 경제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이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현실로서는 많은 노력이 뒤따라야 할 부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제 우리나라의 절대 빈곤 가정이 10%가 넘는다고 하는데 중산층으로 대변되는 경제의 허리를 두껍게 만드는 길은 너무 요원하겠다는 실망감이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정치적 선진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자유민주주의가 성공하려면 3권을 분리하고, 사법부가 완전 독립해야 하며, 법치주의를 정착시켜야 하고 또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한다. 박세덕 교수의 말이 모두 맞는 말임에 틀림없지만 진정한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이루는 날이 언제나 올까라는 생각에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는 대목이었다. 작금의 정치 현실을 굳이 올리고 싶지 않다. 정치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보아도 답답함 그 자체인 이 나라의 시국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회적 선진화에서는 이웃을 배려하는 사회와 정직한 사회의 실현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사회적 선진화야말로 가장 고도의 사회 시스템이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그리고 문화적 선진화에서는 여러 나라의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여건을 조성하고 이웃문화에 배타적이어선 안 된다는 점. 마지막으로 국제적 선진화에선 이웃 나라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는 나라가 되어야 하며 세계에 공헌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보스턴 대학의 어느 사회학자가 지난 200년간 성공한 나라들을 비교 분석했는데 경제 성장의 동인 중 하나가 애국심이었다고 했다는 예를 들면서 오늘의 자신을 알기 위해선 역사를 공부해야 하고 역사를 소중히 해야 애국심이 생기고 애국심이 생겨야 공동체가 발전하며 공동체가 발전해야 비로소 개인의 자유주의가 빛나게 된다고 한다. 모두가 맞는 말들 뿐이다. 꼭꼭 짚어가면서 읽었던 부분답게 이런저런 나름대로의 내 개인적인 의견도 많았던 부분이었다.

얼마 전 택시요금이 올랐다. 이미 소리 소문도 없이 가스비며 전기료 같은 공공요금들이 오르기도 했지만, 택시요금의 경우는 피부에 와 감기는 강도가 다르다. 택시비가 오르면 곧이어 다른 공공요금이 줄줄이 오르는 것은 너무 뻔한 일이다. 동창 모임에서 만난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 하나는 택시요금이 오른 후 손님이 표시 나게 줄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 친구 식당에 술을 대주는 분도 택시요금이 오른 후 술 납품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걱정을 하더란다. 하지만, 더 걱정은 바로 택시기사들이다. 요금이 오른 후 가뜩이나 없는 택시 손님이 그나마 씨가 말랐다고 하니 말이다. 어떤 기사님은 택시 요금 올린 사람들이 과연 택시를 타고 다니기는 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기도 하셨다. 이래저래 서민들은 지금 보릿고개 같은 괴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좀 더 현실적인 대안들을 제시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너무 좋은 내용의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그러니까...작고 소소하게 무엇인가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방법보다는 좀 더 크고 넓은 이야기들이어서 나 같은 보통사람에겐 오히려 학문적 수업 시간으로서 의미는 있었지만 실용적이진 못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분들의 강의가 마음에 와 닿는다. 곁들여진 사진이나 그림 등 내용을 설명하는 구체적 자료들이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내용들을 쉽게 다가서게 도와준다. 쉽지 않은 내용인데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출판사의 기획의도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프로그램을 마무리 할 때까지 16분의 석학이 출연했다고 한다. 두 권의 책 중 나머지 한 권에 대한 기대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