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부활이냐 형벌제도 폐지냐

비가 내린다.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졌는지 어스름의 색깔이 진해졌다가 잠시 물러난다. 은파를 들으며 이 글을 쓴다. 오래간만에 마음이 차분하다. 미처 끝내지 못 해 마음을 무겁게 하던 책 읽기를 끝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독서 습관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느낀 점이 참 많다. 대부분은 고집스럽고 외곬수이지만 책을 대하는 자세만큼은 늘 겸손하다고 생각했었다. 책을 읽을 때도 성실하게 읽으려 노력하지만 책의 내용을 수용할 때도 수업을 듣는 학생처럼 내용을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려 애썼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래서 생소한 내용도 책을 읽는 동안 충분히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내용도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내 독서습관도 얼마나 건방진 태도였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나처럼 사회학에 대해 쥐꼬리만 한 지식이나마 알고 있다는 자만에 빠져있거나 범죄학, 법학에 문외한에게는 범접하기 힘든 책이었다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주 오랜 시간을 붙들고 씨름을 했다. 이 책을 읽는 과정이 처음엔 호기심으로 나중엔 순전히 오기였음을 고백해야겠다. 책 한권을 읽고 뒷말이 너무 장황하다고 할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 투자한 시간들이 낯설고 새로운 분야의 정보에 대한 도전과 독자로서 가져야 할 좀 더 겸손한 태도에 대해 고민한 시간이었다면 그 각고의 노력들이 결코 아깝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이해하는 길은 우선 저자인 루크 홀스만이라는 인간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루크 홀스만은 노르웨이의 닐스 크리스티 및 토머스 마티센과 더불어 세계 형벌폐지주의 3대 사상가이다.

루크 올스만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있는 에라스무스 대학 형법 및 범죄학 교수로서 네델란드 마약 비범죄화 정책 수립과 운영의 기초를 제공한 분이라고 한다. 그는 금년 1월 29일 86세를 일기로 타계하셨다. 형법과 범죄학 교수이면서도 대단한 관료출신이기도 한 그의 이력들은 이 책이 딱딱하고 교과서적인 사회학 책일 거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지만 막상 책을 읽으면서 폐지주의가 현대를 이끌어가는 한 줄기의 사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루크 홀스만이 주장하는 ‘폐지주의’란 무엇인가?

폐지주의는 1960년대 북유럽에서 처음 등장하였으나 학계에는 1983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제9차 세계범죄학대회에 와서야 비로소 처음 소개되었다.(중략)

폐지주의는 통상 범죄(개념)의 폐지, 범죄로 규정하는 범죄화(형법)의 폐지, 감옥의 폐지, 형사사법제도의 폐지, 피해자의 폐지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가두는 제도를 없애고 대신 ‘재활제도’로 복귀하도록 하는 길(중략)이며 실제로 범죄란 형사사법제도가 자기 존립을 위하여 허구적으로 만들어낸‘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폐지주의는 좌파 현실주의 범죄학 이론,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비판이론, 무정부주의 정치철학 등과 같은 세 가지에 사상적 뿌리를 두고 있다.(page14-16)

폐지주의는 잘못된 사회질서를 반영한 형사사법제도, 이데롤로기적인 범죄의 개념, 정당성이 존재하지 않는 권력과 형사사법제도를 기본 전제로 한다. 폐지주의에서의 형법의 제도란 억압에 불과하다고 보며 형법은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문제를 야기하는 제도로서 사건이 일어난 후의 대응이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때어내는 작용에 불과하다고 본다. 따라서 폐지주의는 형사적 강제 수단을 폐지하고 대신 회복이나 보상의 방법으로 바꾸도록 하는 게 좋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으며 형사사법제도가 폐지된 세상이 과연 유토피아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형사사법제도의 폐지와 사형제 폐지를 거론할 때 우리는 대부분 흉악범죄에 대해서만 기준을 두고 이야기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거론했던 부분은 형사사법제도가 관장하는 수많은 부분들 중 아주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에 대해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법의 테두리 안에 살면 누구나 편안하고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 법이라는 것이 과연 모든 이에게 공평하고 공정한 것이며 실행과정에서 어떤 인간의 존엄성도 훼손하지 않는 것인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보는 계기도 되었다.

물론, 나는 사형제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인간이 인간을 단죄한다는 것은 완벽한 단죄가 될 수 없을뿐더러 인간답지 못한 대응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흉악범을 극형에 처하는 것은 충격요법은 될 수 있을지언정 문제의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본다.

더군다나, 형법이 정치적 해결방법으로 사용될 경우 파워 게임에서 진 한 쪽이 ‘사형 당해 마땅한’이라는 심판으로 제거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정치는 역사가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고 그런 의미에선 루크 홀스만의 폐지주의 쪽으로 한 발 다가서고 싶다.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의미 있는 독서의 시간을 가졌다. 사회의 다른 한 쪽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지식과 정보에 대해 너무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겠다. 내 그릇 만큼만 내가 수용할 수 있을 만큼만 책도 욕심을 부려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