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의 정원

타샤는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영혼이다.

정원은 가치가 있다. 생활에 도움이 되니까. 하지만 그 저변에는 엄청난 환상이 도사리고 있다. 타샤 정원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다. (page 25)

마음이 몹시 복잡한 날 이 책을 만났다. 책방의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 들 중 이 책이 내 눈에 띄는 것은 아마도 내가 몹시 피곤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마음이 뭔가 위안을 구하고 있진 않았을까?

최근 아주 가까운 사람의 블러그에서 내 블러그와 통하기가 끊어진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내가 끊은 적 없으니 그 쪽에서 나와의 통하기를 끊었다는 소리겠지. 늘 함께 공부해보자고 꼬드기는 내게 적당히 거리는 두고 다른 공부를 하던 사람. 귀농을 꿈꾸던 그의 브러그에서 타샤 할머니의 정원에 대한 글을 읽었을 때 언젠가 한 번은 저 책을 읽어야지 라고 맘 먹어보기도 했던 거 같다. 돌이켜보니 그 때는 타샤 할머니의 며느리 인터뷰 기사를 어느 잡지책에선가 읽은 후였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타샤 할머니의 며느리는 한국계였던 거 같다.

이 책이 내 눈에 뜨였던 건 우연이었을까? 살면서 나는 세상에 우연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 이미 당사자의 무의식 속에 들어가 있던 생각들이 행동을 이끌어낸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식의 사건의 우연성은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화초를 좋아하는 나와 귀농을 꿈꾸던 내게 살가웠던 그. 그리고 타샤 할머니의 넓직한 정원과 거기에 흐드러진 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우연인 것처럼 이 책에 손이 가게 했다는 거다. 이 글을 쓰면서 잠시 마음이 아리다. 좋아하는 것들과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이 새삼 쓸쓸하다. 방금 비록 사진으로만 일지라도 잠시 타샤 할머니의 그림 같은 정원에 빠져서 눈이 호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내가 생태적 삶을 살게 된다면‘이라는 주제로 레포트를 작성했었다. 나는 거기에 귀농이 생태적 삶이라고는 보지 않는다는 견해를 적었었다. 생태적 삶이란 인공적 교정이 최대한 배제된 상태여야 한다고 보고 또한 자연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물질로의 순환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타샤 할머니의 정원은 정말로 아름답다. 이 책을 빌려주던 책방의 친구는 내가 이 책을 읽으면 나도 30만평쯤의 땅을 사고 싶어질 거라고 우스개 소리를 했다. 타샤 할머니의 정원을 나도 가지고 싶어질 거라는 소리였겠지.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뭔가 자연스럽지 않음을 느꼈고 그 감정이 참으로 불편했다. 타샤 할머니의 정원은 책에서 소개하는 대로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개의 계절마다 저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난 어쨌든 타샤 할머니의 삶이 참으로 답답했을 뿐이었다. 본인이 1800년대의 인물이 환생한 거라고 믿는 사람. 그래서 1800년대식으로 사는 사람. 책에 실린 사진 속의 예쁜 소녀는 한 눈에 보기에도 옛날 옷을 입었고 화관을 썼으며 맨발인 모습이다. 이 모습이 바로 타샤 할머니가 좋아하는 모습이라는 게 불편했다.

선홍색의 진달래는 못 참아서 자리를 옮기고 파스텔조의 진달래들만 눈에 잘 띄는 곳에 남겨둔 타샤 할머니의 정원이 정말로 생태적이라고 자연적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아름답기는 하지만, 인공적인 정원보다 더 인공적으로 만들어지고 통제되는 그 정원이 이 책을 읽은 후 더는 부럽지 않게 되어서 약간 속상하고 섭섭했다. 왜냐하면 나도 그렇게 예쁜 숲을 하나 알고 있었으면 하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