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으로 떠나는 세계 여행

지난 가을 예천 외갓집에서 따온 노란 감국으로 만들어 놓은 국화차가 아주 예쁘게 완성되었다. 찻집에서 파는 국화차보다 맛은 좀 밋밋하지만 향기만큼은 사서먹는 국화차에 비길 수 없다. 국화차를 끓일 때마다 함께 국화꽃잎을 흩어주시던 외할머니 생각을 한다. 차란 마셔서 입안을 개운하게 하고 피로를 풀어주는 물리적 효능도 좋지만 차에 얽힌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정신적 효능 또한 가볍지 않다.

그래서 나도 차를 좋아한다. 다기를 갖추고 다도를 따르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청량음료는 거의 안 마시다보니 집엔 언제나 차가 떨어지지 않는 편이다. 찬장을 열면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의 차들이 보인다. 저마다 한 가지 씩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서 더 마음이 가는 차들이다. 친정엄마께서 만들어 주신 감잎차도 있고 백중 때 멀리 동생이 사는 김제의 한 사찰에 불공 갔다가 점심 설거지 해 주고 품삯으로 얻어 온 연잎차도 있고 인사동서 사 온 이슬차도 있다. 얼마 전 베트남 여행을 다녀오신 아들네 반 학부모님께 선물 받은 베트남 연꽃잎차와 베트남 커피믹스도 있고 감기에 걸렸을 때 자주 마시는 카모마일차도 준비되어 있고 선물로 받은 녹차도 몇 종류인가가 준비되어 있다. 물론, 커피도 좋아한다. 원두커피로 불루마운틴, 킬리만자로, 아이리쉬, 헤이즐넛을 조금씩 사다가 내려먹기도 한다. 변변한 다기가 없으니 적당히 적당히 차를 끓이고 간편식으로 커피도 내려 마시는 편이지만 즐겨 마시다보니 나름대로는 취향이 생겼다고나 할까

책을 읽는 동안 세계의 차뿐만이 아니라 알지 못 했던 그 나라의 문화와 풍속을 만나는 기쁨이 쏠쏠하다. 어떤 여행안내서보다 흥미진진하게 여행객을 이끌어 주는 책과의 만남이다.

나도 한동안은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는 꿈을 가졌던 적이 있다. 체 게바라의 발자취를 한 번쯤 밟아보고 싶다는 소망과 마야와 잉카의 문명들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에 참 열심히도 라틴 아메리카 각 나라에 대해 공부했던 기억이 그들이 즐겨 마신다는 마테차를 읽으며 되살아났다. 그들에게 ‘마시는 샐러드’라고 불리며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고 거친 생활을 피로를 풀어준다니 그 맛이 어떨지 궁금하다.

커피숍에서 대마초를 피울 수 있는 나라라 소개된 네덜란드와 홍차의 나라 영국의 티타임 소개는 그들이 마시는 차보다도 함께 곁들여지는 티 푸드에 더 관심이 갔다. 달콤하고 바삭거리는 과자의 맛이 향 좋은 커피와 함께 어우러진 광경 또는 부드러운 케익과 홍차가 어우러진 모습이 눈에 선해서 나도 달콤한 쿠키를 곁들인 따끈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으니까

미국의 차 문화는 기대했던 것과 달라서 좀 실망스럽다고 해야겠다. 실용적이고 다양하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삭막함을 느꼈다면 미국에 대한 한 단면만 보고 내가 성급하게 평가한 것이기를 바란다.

나라마다 고유한 환경과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한 가지만 보고 전체에 대한 단정을 짓는 것은 너무 조급한 행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음식이나 차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그 나라에 대해 공부해가다보면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풍속이나 풍습을 만나게 되는데, 의. 식. 주 중에서도 식문화야말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문화의 집합체이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차는 일상적인 음식과는 좀 다르게 그 나라 사람들의 인간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사회의 한 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재가 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다룬 각기 다른 나라의 특색 있는 차 소개도 좋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티타임의 의미와 형식도 좋은 공부거리가 되었다.

이 책은 일본의 오사다 사치코와 우리나라의 정은희가 공동저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차에 대해선 많은 부분을 할애해 소개한 반면 우리나라의 차는 소개되지 않고 있어서 조금 의아했다. 이른 아침에서 출판 된 다른 도서 중 김운학 지음의 [한국의 차 문화]라는 책이 있다. 우리의 차 문화에 대해 더 자세하게 집필 한 책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차 소개가 빠진 것은 아닌가라고 유추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생기는 것 또한 감출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의 차 문화는 다도라고 하는 형식으로 너무 고급화 되어 있거나 아니면 커피로 너무 대중화되어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해보았다.

고상한 다도와 대중적인 커피문화 사이에 다른 차들도 존재하지만 두 가지 차문화의 간극을 좁혀주기엔 힘이 너무 미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티타임이라는 형식도 우리나라엔 낯선 문화이지 않을까? 무엇이든지 빨리빨리 해치워야 하는 우리나라의 사회구조상 느긋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티타임의 정서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생각의 가지를 길게 멀리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 그런 책 우리 차 문화 소개가 빠졌다는 섭섭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좋은 책으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