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시(詩)를 읽다. 4

최일화 시집(詩集) 시간의 빛깔

 

저는 비평가가 아니니 시를 비평적으로 읽는 것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그저 독자로서 또는 내 편한 대로 읽습니다. 그럼에도 가끔 국문학을 공부하면서 고작 한 학기 공부했던 비평론이 머릿속을 헤집을 때가 있습니다. 굳이 얘기하자면 제가 좋아하는 비평은 ‘역사. 전기적 비평’인데요 이 방법은 오류가 많으니 어쩌니 하는 또 다른 시각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방법론입니다. 시인의 개인사에 대해 연구해가며 시를 읽다보면 시인이 표현하려고 했던 시 세계를 알 수 있을뿐더러 같은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그 단어가 특정 시인의 시에서만 가지는 특별한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게 됩니다. 이를테면 같은 말 다른 의미의 낱말이라면 김춘수 시인의 ‘꽃’이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어일 수도 있겠군요. 김춘수 시인의 그 ‘꽃’이 양준호 시인의 시에 자주 언급되는 그 ‘꽃’과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지요. 같은 맥락으로 저의 졸시 ‘시간의 비늘’에 언급했던 그 시간은 최일화 시인의 시 ‘시간에 대하여’에 등장하는 ‘시간’과 사뭇 다르다고 느껴집니다. 이렇게 같은 단어 다른 의미의 발견을 ‘역사. 전기적 비평’의 맥락에 줄을 대어 생각해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소리입니다.

 

다만 꽃이 피었다가 사람들을 울려 놓고 지는 것이다.

올챙이가 자라 개구리가 되고 도굴꾼이 왕릉을 도굴하듯

술꾼들이 개구리를 잡아다가 술안주로 먹는 것이다. 시간

이 나를 데리고 꽃잎을 띄우고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멈춰 있는 시간을 가로질러 세상이 봄

이 되었다가 가을이 되었다가 다시 봄이 되는 것이다. 움

직이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은 참새고 나팔꽃

이고 초등달이다.

 

가만히 있는 너를 시간이 한 발짝씩 죽음을 향하여 데리

고 가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건 새가 울건 시간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다만 네가 시간 속을 헤엄쳐 그윽한 내

일을 향하여 가고 있다. 시간이 기차처럼 너를 태워 데리

고 갈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니라 네가 물갈퀴처럼 지

느러미처럼 헤엄쳐 비단잉어처럼 꿀벌처럼 물총새처럼

시간의 집터 위에 집을 지어야 한다.

 

네 손발이 삿대가 되고 네 머리와 가슴이 돛대가 되어

푸른 하늘 은하수를 노 저어 가야 한다. 우주 속을 유영하

는 행성처럼 너는 시간 속을 한 마리 황조롱이처럼 날아

올라야 한다. 어제부터 터지기 시작한 산수유도 개나리도

저희들 날개로 훨훨 날아 저희들 집을 짓기 위해 예쁜 꽃

을 피우고 있다. 시간이 너를 구름열차에 태우고 고대광

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네가 시간 속을 뚜벅뚜벅 가로질

러 꽃도 되고 나비도 되는 것이다.

 

[최일화 시 ‘시간에 대하여’ 전문]

 

최일화 시인의 시집 ‘시간의 빛깔’도 그렇고 지난 ‘아벨서점’에서의 시낭송회에서 낭송되었던 시들도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최일화 시인께서 적지 않으신 연세이신지라 처음엔 고개를 좀 갸우뚱거리기도 했었지요. 최일화 시인의 시 속에 담겨있는 정서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려나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며칠 전 시인께서 인천문협 카페에 올리신 한 편의 글을 읽는 순간 그동안의 궁금증이 모두 해결되기는 했습니다.

 

이제 나는 어머니의 발을 씻겨드리며 어머니가 뿌리신

노래의 씨앗을 하나씩 싹 틔워 가난한 사람의 선물로 나

누어주겠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의 모든 허물을 핏물 같은

눈물로 이미 다 씻어내었습니다. 철부지 아들은 이제야

봄의 텃밭에 그 노래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합니다. 어머

니가 계신 그 먼 곳까지 들리려면 나는 얼마나 많은 노래

의 씨앗을 뿌려야 할까요. 내 노래를 들으면 어머니는 안

우시는 척 또 우시겠지요. 한 번도 어머니의 눈물을 보지

못한 아들은 마침내 진주 같은 눈물을 볼 수 있겠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이 흥건하게 대지를 적실 때 세상에선 노래

의 씨앗들이 함성을 지르며 무수히 자라 오를 것입니다.

 

[최일화 시 ‘노래의 씨앗’ 중 일부]

 

사실 시인의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시’라는 것이 시인의 정서가 강력한 반응을 일으켜 써지는 것이라 한다면 더욱 더 개인만 알아듣는 이야기로 빠지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머리로 쓰는 시는 일반화가 쉬운가 하면 그도 또한 쉽지 않습니다. 느낌이 없이 만들어진 시는 더욱 공감을 얻기 힘들므로 이래저래 독자가 쉽게 다가서고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는 건 어렵습니다. 위의 시 ‘노래의 씨앗’은 최일화 시인의 산문을 읽고난 후 비로소 이해하게 된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앞부분들엔 최일화 시인의 개인적 이야기가 내용을 구성하고 있어서 다가서기가 쉽지 않았습니다만, 발췌 부분은 따로 떼어놓고 보면 굳이 시인 개인의 인생사와 줄긋기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이 갑니다. 하여 저는 외람되게도 시집에 수록된 시들 제법 여러 편에서 보이는 이런 부분들을 좀 다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세상은 지금 폭설과 연일 강추위다

이 추위를 견디며 나는 봄을 기다리고 있다

내 젊은 날은 연일 폭설과 강추위였다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다 흘러간 세월이었다.

 

[최일화 시 ‘머리 염색을 하다’ 중 일부]

 

연일 폭설과 강추위였노라고 뒤돌아보는 젊은 날이 있었으므로 오늘의 최일화 시인께서 계신 건가요? 제가 아는 최일화 시인께서는 무척 세심하시고 깊이 있으십니다. 고즈넉한 호수처럼 맑은 마음이 느껴지거든요. 아직도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신다면 머지않아 그 따듯한 봄 햇살 속에 서시게 되리라고 저는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