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림 스님과 함께 금강경 읽기.

책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 [백과사전]이라고 하면 좀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백과사전을 좋아하는 것은 내가 굉장히 현실적인 인간의 한쪽에 선다는 의미일 것이다. 시를 쓴다는 사람이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거야말로 모순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지만 궁금한 것을 백과사전에서 찾아볼 때의 후련함은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고 난 후의 기분보다 훨씬 좋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 또 있다. 바로 기독교의 바이블과 불교 경전 중에서 특별히 금강경이다. 한 때는 성경에 빠져서 해마다 한 번씩은 통독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랬던 적은 겨우 서너 해 뿐이었고 거의 대부분은 몇 년에 걸쳐서 읽어내곤 했으니 어떤 해엔가는 내 스스로도 어찌나 대견하던지 떡을 다 해서 이웃집에 돌렸을 정도였다. 불경도 마찬가지. 그 또한 아침마다 금강경을 한 번씩 읽기를 또 서너 해 했던 것 같다. 전체를 외우지는 못 하지만 그래도 웬만큼 스님의 독경은 알아들어 어떤 절집엔 갔다가 스님 염불 하는 소리가 맘에 안 들어 발을 끊어버린 不敬을 저질렀던 시절이 있었다. 저자인 효림 스님도 행자시절 금강경을 독송해보니 처음엔 그 뜻을 잘 몰랐다고 했다. 아마, 나야말로 입으로만 금강경을 외웠지 그 의미나 철학에 대해선 감히 생각지도 못 했던 무식한 신도가 아니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물론 오래전의 이야기지만.

그 후. 아주 오래간만에 금강경을 만난다. 금강경 ‘읽기’라는 대목에 비중을 두지 않았던 나는 은연중 ‘금강경’이 한 권 올 거라고 생각을 했었나보다. 처음 책을 펼치면서는 앞부분의 몇 페이지쯤은 어라? 이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어내라는 소리지? 라며 조금 당혹스러워 했었다. 이 책은 효림 스님이 말 하는 대로 따라서 읽으면 된다. 이 분의 녹음테이프를 그대로 글로 옮겨놓아 읽는 것 자체가 듣는 것과 별반 달리 느껴지지 않는다. 전체를 구어체로 옮겨놓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나름대로 공력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느끼게 된다.

성남 봉국사라니 내 예상대로라면 대처에 나 앉은 절집일 것 같다. 한번쯤 직접 찾아가 법문을 들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 잠시 빠져보기도 했다.

금강경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이다. 불취어상不取於相 시명보살是名菩薩은 금강경의 핵심사상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相은 我相을 말하기도 하지만 절대적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法相을 말하기도 한다. 참된 인간상을 금강경은 ‘相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본문은 제1강부터 34강까지 나누어져 있다. 제2강의 경??이 알고 있던 금강경의 의미를 정확하게 풀이해준다. 금강경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을 약칭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금강金剛은 다이아몬드를 말 하는데 지구상의 물질 가운데서 가장 견고한 것이다. 즉, 금강경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견고한 사상이며 철학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것도 깨트릴 수 없이 견고하다는 것은 무엇이든 깨트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때문에 금강은 중생의 번뇌를 다 깨뜨릴 수가 있고, 어떤 종교나 사상과 철학도 다 깨뜨릴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반야般若는 지혜라는 뜻이고 바라밀波羅蜜은 한역하면 도피안渡彼岸 즉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라는 뜻이다. 즉 금강경은 ‘스스로 이상적인 세상으로 가는 길 “반야 般若”를 가르쳐주는 경전이라는 뜻이다.

금강경의 내용을 아주 자세하게 풀이를 해 주는 부분도 재미있지만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풀이 중간 중간에 곁들여졌을 이야기들까지 함께 읽을 수 있다는 것과 금강경에 나오는 불교용어들을 주석을 읽다보면 불교 사전을 옮겨놓은 것처럼 자세하고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동으로 기운 나무는 동으로 넘어진다.”...부처님 경전에 나오는 이야기로써 동으로 기운 나무는 당연히 동으로 넘어지듯이 우리가 마음을 어디에 머물게 하느냐에 따라 그 쪽으로 기우러진다는 뜻입니다.(page38)

경전 풀이에서 살짝 곁길로 살짝 벗어난 듯 더 쉬운 이야기로 마음을 일깨워주기도 하고, 해박한 지식으로 역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한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전쟁이랄 수 있는 임진왜란. 6.25전쟁과 좌. 우익의 분열에 대한 언급한 부분(page98-page101)은 무엇보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스님의 시각에 공감했던 부분이다. 금강경을 강의하면서 철학. 과학. 정치. 경제. 사회. 생태까지 아우르는 스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맨 처음 전체를 읽어보지도 않고 어라? 이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어내라는 소리지? 라고 했던 내 무식의 소치가 정말로 부끄러워진다.

효림 스님은 이 책의 내용을 9개월간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긴 시간의 흔적을 오고가는 수고로움 없이 편하게 며칠 만에 누리고 내 것으로 만들었다. 이제 금강경을 예전에 읽었던 방법과는 조금 다르게 읽어볼 차례인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금강경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공부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