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도 마음이 있다

작년에는 뜻하지 않게 저작권 문제로 경찰서엘 들락거렸다. 경찰서라는 곳이 이상하게도 가깝고도 먼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왠지 경찰서에 갈 일이 생긴다면 좋은 일보다는 귀찮고 버거운 일일 거라는 선입견. 꼭 가야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다녀오기 며칠 전부터 그 심난하던 마음이야 뭐라 말 할 수 있을까. 다행히 일이 잘 해결되었지만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을 통해 본 법과 사람 이야기-라는 구절에 마음이 끌립니다. 며칠 전 희대의 살인마였던 정남규가 자살을 했습니다. 평소 사형제도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만, 구치소 내에서의 자살 사건이라 내심 충격이 컸습니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 필요한 법이 사람을 옭아매는 새로운 철장이 될 수 있겠지요. 법이야말로 양날의 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서 법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배우고 싶습니다.(2009. 11.25. cafe.daum.net/liveinbook)

이 책을 만나기 전 내가 남겼던 책에 대한 짧은 이미지였다. 정말로 법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배울 수 있을까 책을 기다리는 내내 궁금했다. 저자인 성혜미는 기자다. 저자에 대한 소개도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 재미있다.

2003년 연합뉴스 기자가 되고 나서......매일 경찰서로 출퇴근하고 집회 현장부터 살인, 자살, 화재 현장까지 쫓아다니다 보니 본의 아니게 시신도 많이 봤다......2009년 7월부터는 서울중앙지검. 법무부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특히, 대검 중수부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검찰총장의 사퇴로 이어진 소용돌이 속에 함께 있었다.(책 표지 -지은이소개)

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다. 그러나 법은 강한 사람들과 더 친하다. 그리고 법은 약한

사람들의 법이기도 하다. 그러니 ‘법에도 마음이 있다’란 것이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내린 결론이다. 살면서 법 없이도 순하게 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평화로운 삶이 없을 거 같다. 하지만, 순하게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또 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서로 구속하기 위한 법이 아닌 서로를 배려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 법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선 묻고 있다. 간통죄가 없어진다고 간통이 없어지나요?

가정과 일상 속의 법, 약한 사람들의 법, 죄를 벌하는 법, 사회를 움직이는 법,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법까지 모두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대부분 우리 시대의 신문 사회면을 장식했던 사건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모든 이들의 주목을 끌던 사건이 법적으로는 어떻게 해결되었고 결론 내려져가고 있는지 알게 되는 것도 재미있다. 고 최진실이 아이들의 성을 바꾸었던 일을 가지고는 친권과 법의 문제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먹거리 파동과 미국산 쇠고리 문제로 부실하기만한 식품위생법의 실효성과 한계를 질타하기도 한다.

책을 읽어도 내 개인적인 문제와 연관시켜 가며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다보니

당연히 내 관심사와 연관이 있는 부분에선 더 눈이 오래 머물게 된다. 머지않아 아들을 군대에 보내야 한다. 당연히 병역법 헌법소헌 부분에 눈이 갈 수 밖에.

헌법 제판소가 1999년 12월 ‘군필자 가산점제’에 대해 내린 위헌결정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과거 공무원 채용시험엣는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친 남자에게 과목별 만점의 3~5%를 더해 주도록 재대군인지원법 제8조에 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공무원 시험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합격점이 평균 80점을 넘고 소수점 차이로 당락이 좌우되는 상황에서 현역 군필자에게만 과목별로 3점 또는 5점을 더해주는 것은 과도한 차별이라는 문제가 제기되었다(page146)

2008년 12월 국회 국방위가 ‘군필자 가산점제’를 부활하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안을 법사위로 넘기면서 논란이 재점화되기도 하였으나 결국 국회를 통과하지 못 하였다.(page147)

개정안은 군 복무를 마친 사람이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과목별 득점의 2.5% 범위에서 가산점을 받도록 하는 대신 가산점을 받아 합격하는 사람이 전체 선발인원의 20%를 넘지 않도록 제한(page148)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나도 남.여 평등에 대해서 매우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사람이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남. 여의 구별 없이 동등한 책임과 의무를 지는 사회야말로 완벽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사회의 한 모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병역법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는 솔직하게 이 땅의 여성 인권론자들 또는 남녀평등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미웠다.

군대가 많이 좋아져서 이젠 예전의 군대가 아니라고 한다. 군기도 예전처럼 심하지도 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한결 편하게 군복무를 마치고 나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군대는 군대다. 그곳은 수련원도 아니고 고시원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규율과 규칙을 지켜야만 유지가 되고 본연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소리다. 사사건건 개인의 성향과 취향을 맞춰서 유지할 수 없는 집단이고 여전히 계급과 군기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단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한창 때의 남자들에게 군대에서의 2년은 어쩌면 군대에 가지 않는 여자들의 20년과 같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공무원 시험에서의 당락 때문에 군필자의 가산점제를 없앤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처럼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인들이야말로 몸 바쳐 애국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도 군대를 가면된다는 이런 헛소리는 정말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여자들이 군대 가는 거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엇이든 집행을 위해선 경비가 소요되기 마련이고 사회적으로도 파급효과가 크다. 무조건 목소리를 높이고 한데 뭉쳐서 떠들어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킨다는 것이 좋은 방법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개인적으로 군 가산점제가 부활하기 바란다. 개정을 거쳐서 모두 납득이 가는 방향으로 결정되었으면 좋겠다. 아들 가진 부모의 마음이라도 좋고 군대 가야 할 젊은 남자애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생겨나 마음이라고 해도 좋다. 그래서 누군가 눈 흘겨도 할 수 없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불법 체류 노동자들에 대한 법적 보호 부분을 읽으면서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무척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백인들에겐 우호적이면서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에겐 우월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말을 서툴게 한다고 생각마저 어눌한 것은 아니라는 저자의 말에 백번 동감한다. 우리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는 것이 법의 사명이라면 외국인노동자에 대해서도 공정하게 적용되는 법의 집행이야말로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의 면모를 보이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사형 집행 부분에 대해서는 사형을 당하는 사람들의 고통뿐만이 아니라 사형집행인의 고통도 함께 다룬 부분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사형집행 대상자의 명단을 받아드는 순간 너무 긴장되어 개인적인 고뇌를 할 틈도 없었다

(page170)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 12월30일 사형수 23명을 한꺼번에 형장의 이슬로 보낸 뒤 11년째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page170)

김영삼 정부 시절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한 두 명도 아닌 스믈 세 명을 어떻게 한꺼번에 사형시킬 수 있었을까 모골이 송연해 졌다. 어쨌든, 나는 사형제엔 반대한다. 사형수라고 하면 사람들은 일단 살인 같은 악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만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그런 범죄자들만이 사형 언도를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볼 필요가 있다. 사형과 무기징역형 사이의 대체 형벌 마련 요구를 헌법 제판소에서 받아들였다고 한다. 2009년 6월 사형제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해를 넘기지 않고 결론을 내릴 전망이었다고 했는데 그 뒤가 궁금하다.

법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참 많이도 아팠다. 날카롭고 딱딱한 부분만 있는 것이 법이라고 생각했었다. 몰인간적이고 몰인정하다고 생각했던 그 법이 사실은 우리처럼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거. 그래서 세상은 굴러가는 것이고 살만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