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잘 못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왜냐면 자기가 접하는 것들에 익숙해져서 감각이 무뎌지기 때문입니다. 독서도 이와 유사한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늘 괜찮은 책들만 볼때는 세상 모든 책들이 다 유익한 내용과 심오한 의미를 지닌 양서일 거라는 착각에 빠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럴때 이런 환상을 깨는 책을 만난다면 기쁜 일일까요 슬픈 일일까요.나의 생각은 처음엔 난감하고도 서글픈 기분이 들 것이다 라는

겁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하다 보면 이 책으로 인하여 추후에 책을 고를때 신중을 기하게 될 것이고 양서의 고마움을 깨닫게

되므로 오히려 기쁜 맘이 들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이 책<어리석은 자에게 권력을 주지마라>가 최근 나에게 독서의 슬럼프와 함께 그런 깨달음을 준 고마운(?) 책입니다.

책 제목에서 풍기는 교훈적인 메시지로 볼 때 "야, 정말 이 책은 현 시대의 정치 사회적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해

줄 만한 책으로 보이지 않니?"하고 나에게 기대만발의 질문을 던지는 책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읽고 나서의 느낌은 요즘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하는 말처럼 "정말 그런 책으로 보이지 않는다"입니다.

저자의 주장 중 한 가지를 예로 들어 보자면 우주의 장고한 역사 속에서 인류의 출현에서 소멸까지는 너무나 짧은 순간이라서

무의미하고, 태양이 수박이라면 지구는 수박씨 정도에 불과해 미미할 뿐이라 겁니다.

그러나 이런 양적 비교만으로 의미를 부여한다면 수박씨의 생명력과 그로 인해 탄생할 수많은 수박들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궤변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요?

저자 스스로도 '이는 나이가 들어서도 성숙하지 않는 일종의 어린아이의 반항과도 같다'-11p라고 말했듯이,

종교와 경제와 정치의 문제점을 저자 나름대로의 논리와 지식으로 펼쳐 보이고 있지만, 읽으면서 느낀 점은 대학 초년생이

자기만의 개똥철학을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친구나 선후배들 앞에서 자랑스레 떠들어 대는 것과 다르지 않다라는 생각입니다.

저자의 약력을 보면 "과학/인류학/윤리사회이론을 연구하는 철학박사이면서 이슈를 부르는 문제적 작가, 두려움을 모르는 사상가,

작곡가이자 뮤지션으로 불린다."라고 하지만 다른 것은 모르겠으나 '문제적 작가'인 것만은 인정해 주고 싶네요.

한 분야만이라도 제대로 연구하고 정제된 깊이 있는 글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이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겨 주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