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러브레터, 한시 편지 시

러브레터란, 꼭 남녀사이에만 국한 된 것인가? 근대, 현대에 들어와선 그럴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남녀가 아닌, 친구, 부부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러브레터가 가능했다. <한시러브레터>란 책을 대하고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친구 혹은 연인,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직접 펜을 들고 종이편지를 써 본 게 언제인가 싶다. 언젠부턴가 컴퓨터가 보급화되고, 인터넷, 메일 등을 쓰게 되면서부터 손에 펜을 들고 글씨를 쓸 일이 없어져 버리게 된 것 같다.

한글 러브레터도 어려운데 한시 러브레터라니, 아무튼 책을 대하는 순간, 묘한 호기심이 생겼다. 한시든 한글이든 러브레터란 표현은 언제나 가슴을 쿵쾅쿵쾅 설레이게 만드는 말인 것 같다. 과연 한시 러브레터 속에는 어떤 아름다운 시들이 혹은 시어들이 담겨 수신인에게 감동을 줬을지 사뭇 그 내용이 궁금했다. 사실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고 나누는데 시적 언어만큼 아름답고 순수한 말이 또 있을까 싶다.

한자, 한문, 한시는 대단히 함축적이다. 한자라는 문자 특성이 뜻글자이기 때문에 많은 다양한 의미를 담아 표현할 수 있다. 특히 한시의 경우, 5글자 혹은 7글자로 표현을 하는데,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알고 나면, 대단히 감동적인 경우가 많다.

 

我是老醫能診病(아시노병능진병)

誰爲崇者必麴神(누위수자필국신)

 

내가 좋아하는 고려 최고의 문인인 이규보가 지은 시이다. 이 시는 나 뿐 아니라, 술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며, 음악을 좋아하는 문학도 내지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할것없이 좋아할 만한 작품이다. 하지만, 문제는 글 속에 숨겨진 비밀을 한자, 한문을 알지 못하고서는 시의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는 점.

그렇지만, 이 책의 경우, 원문과 함께 번역, 그리고 해설까지 곁들여져 있어 아주 쉽게 어려운 한시 속 사연과 내용을 읽을 수 있다.

한자, 한문은 대단히 매력적인 문자이다. 그 자형도 운치가 있고 멋있지만, 무엇보다도 장황하고 긴 표현을 간략하게 줄여서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어 더없이 매력적인 것 같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자, 한문은 양반 사대부들만의 고유한 문자로 인식되어 대단히 존숭을 받았지만, 지금은 중국의 문자 내지, 어려운 외계 문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邇來杯酒乾(이래배주건) 是我一家旱(시아일가한)

感子餉芳醪(감자향방료) 快如時雨灌(쾌여시우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한자, 한문, 한시의 매력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 한문, 한시로 쓰여진 글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거나 공부해 보면, 보면 볼수록, 공부해보면 할수록 대단히 신기하고 또 재미있으며 또한 우아한 매력까지 갖추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기에 이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문자이면서 문학이다.

한시랑 친해지게 된 계기는 정민 선생님의 한시미학산책이라는 책을 접하면서부터 한시에 재미를 갖게 되었다. 이후 고문진보을 알게 되었고, 이 책을 공부하면서 이 책 속 중국 옛 시인들의 시들을 즐겨 읽거나 좋은 구절들은 외우면서 한시의 진정한 멋을 알게 되기도 하였다. 이태백, 두보, 왕유 이런 시인들의 시는 그저 평범한 시가 아니라, 그야말로 한 시대의 예술이었다. 한시미학산책 이후 오랜만에 반가운 한시 관련 책 한권을 만났다.

 

한창 절정에 달해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는 뜰의 꽃도

듣고만 있어도 모든 근심과 시름을 저절로 잊게 만들어 주는 훌륭한 음악도

좋은 술, 어리고 고운 예쁜 자태의 미녀도 도무지 흥미가 없다.

참으로 맛있는 것은, 진정 좋은 것은 오직 책 속에 있을 뿐이다.

 

선조 대의 대학자로 10년 동안 미암일기를 쓴 유희춘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시, 즉 한시 러브레터이다. 인생의 지극한 즐거움을 책에서는 찾는다는 남편의 자랑이 담긴 시를 받아본 부인의 소감은 어땠을까? 미암의 아내인 송덕봉은 이 시를 받고 멋진 반전의 시를 지어 남편에게 보낸다. 물론 여기서는 읊지 않겠다. 궁금하면, 이 책 87면을 볼지어다. 보는 바와 같이 <한시 러브레터> 과연 이 책 속에는 우리 선조들이 한시로 어떻게 사랑의 감정, 마음을 담아 수신인에게 전달하고 표현했는지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보면서 사랑과 우정을 노래한 한시도 공부하고 또 공부한 한시를 소중한 벗이나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직접 들려준다면 얼마나 낭만적일까? 분명 나는 그 우정과 사랑이 오래도록 지속되고 또 이루어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