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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이 힘들고 지칠 때

스님이 머물고 있는 산사에 들러...

"스님 계십니까?"하고 불러본다.

굳이 스님을 찾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석가탄신일, 절에 가서 모처럼 절밥을 얻어 먹고 왔다.

예전에 대학 다닐 때는 답사니, 엠티니 해서 우리나라 사찰 유적지들을 많이 다녔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는 이곳들하고의 거리가 멀어져 버렸다.

어린이날, 석가탄신일이 겹친 황금연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오랜만에 옛날 답사다닐 때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 한 권의 책이 와 있었다.

이 책은 먼저 책 속에 절의 풍경들을 그린 그림들이 너무 정겹게 다가왔다. 그림에서 부처님의 인자함이 느껴졌다.

<스님 계십니까> 속에는 우리나라 전역의 크고 작은 수많은 사찰들 중에서 25곳의 사찰과 암자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책 속에 나오는 절 중에서 이미 가본 절도 있고, 아직 가보지 못한 절도 있었다.

영주의 부석사, 안동의 봉정사와 영산암, 경주의 분황사, 고창의 선운사는 이미 가본 절인데, 가본 절에서는 지난 날의 답사 때의 자취가 느껴졌고, 나머지 가보지 못한 절에서는 나중에 가게 되면, 어디를 주의해서 봐야할지 가보지 않고 미리 사전답사 공부를 철저하게 할 수 있어 좋았다.

25곳의 사찰들 중에서 가본 곳은 4곳에 불과했지만, 나머지 절들 또한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사찰들이었다. 특히 영주 부석사의 경우, 10번 이상은 가 본 절이다. 이 곳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하신 유흥준 선생님의 스승이신 최순우 선생님께서 특히 좋아하셨던 곳이기, 그가 쓴 한국미 산책의 책 제목도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이다. 사실 부석사는 책에서는 비록 그러한 내용이 없었지만, 비오고 구름 혹은 안개가 끼였을 때 가서 보아야 부석사의 묘미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절이다. 소백산 줄기 꽤 높은 지대에 자리한 영주 부석사는 특히 비오는 날 절집이 안개파도로 덮여 있을 때 진짜 아름답다. 그래서 지금도 여름에 비가 내릴 때면, 문득 달려가고 싶은 곳이 바로 부석사이다. 절집 마루에 앉아 비 내리는 너머로 소백산맥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렇게 마음이 평안해질 수가 없다. 그리고 부석사는 절집의 지붕을 자세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보아야 하는 절이다. 지붕을 자세히 보면, 아주 독특한 것을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다. 안동의 봉정사도 참 아기자기한 절이다. 여기는 1999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녀간 뒤로 세간에 유명해진 절이다. 이 절은 엘리자베스가 다녀가고 나서 다녀가기 전과 다녀가고 난 뒤가 많이 바뀌어버렸다.

안동의 또 하나의 명찰, 청량산의 청량사는 갈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아직 인연이 닿지 않아 가보지 못한 절이다. 예전에 다른 목적으로 그 곳을 두 번씩이나 지나친 적이 있는데, 청량산, 청량사를 지척에 두고서 그냥 지나온 적이 있다. 그 때 잠시라도 들어가 봤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그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청량(淸凉), 절 이름이 참 청량이다. 청량(淸凉)이란 맑고 시원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청량사는 사계절 중에서 특히 여름에 좋을 것 같다. 청량사가 자리 하고 있는 청량산은 조선 성리학의 거두인 퇴계 이황선생이 감추어 두고 싶어했던 곳이라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좋았으면, 감추어 두고 혼자만 볼려구 했을까?

이 절에 오르면 황홀하여 공중에 있는 것 같으니

열두 봉우리들이 서로 등지기도 하고 마주 보기도 하네

고려시대 문신인 박효수가 청량산을 두고 지은 글이라고 한다. “절에 오르면 황홀하여 공중에 있는 것 같다”는 표현이 참 마음에 든다. 그리고 퇴계선생의 제자인 학봉 김성일도 청량산의 경치를 읊은 시를 남겼는데,

구름 속에 치솟은 산 빙 두른 형세인데

뉘라서 이 선계를 찾아 옥대를 만들었나

라고 하였다. 학봉은 청량산을 구름 속에 치솟아 있는 산으로 신선들이 노는 옥대라고 표현하였다. 과연 퇴계 선생이 누구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서만 보려고 한 이유가 있다. 퇴계는 스스로를 “청량산인”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청량산의 청량사, 인연이 닿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서산의 개심사, 이곳에 가면, 꼭꼭 닫혔던 그간의 마음이 열린다고 한다. 왜냐하면, 開心寺에 들어갈 땐 마음을 깨끗히 씻고 열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란다. 복분자로 인해 유명해진 마을 고창, 그 곳에 자리 잡은 선운사, 그리고 임꺽정과 그의 결의형제들 스승인 병해대사가 모셔져 있는 안성의 칠장사, 소설 임꺽정을 읽으면서 아주 주의 깊게 본 절이다. 부안 내소사, 순천의 선암사, 해남의 미황사 등등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언제가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은 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