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매력적인 소설 <비정근>

 

연일 폭염, 열대야, 찜통더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해도 너무 할 정도로 무더위가 극심하다. 샤워를 해도 몸에 물기가 마르기 무섭게 땀이 삐질삐질 나온다. 선풍기, 에어컨 없이는 하루도 견디기 힘들 정도의 극심한 더위다. 무더위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다. 이때 그냥 무료하게 멍하니 있는 것보다는 책이라도 읽는 게 나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더운데... 짜증나는데..., 한여름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역시 더위와 짜증을 잠시나마 잊는데 도움이 되는 책은 공포, 추리 미스터리 소설일 것이다. 지난 불금 밤에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누워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다가 TV를 끄고 손에 든 책이 <비정근>이었다.

제목부터가 흥미로운 이 책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이다. 일본이나 우리나라 마찬가지로 정규직 교사들이 출산이나 병가 등의 이유로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될 때 그 비는 기간 만큼 근무하는 교사를 기간제 교사라고 한다. 소설 속의 기간제 교사인 '나'는 추리소설 작가가 되는 것인 꿈이다. 그런 만큼 교육문제와 아이들에게 별 다지 큰 관심이 없다. 아이들을 대할 때는 최소한의 관심만을 보이며 정해진 기간 만큼 아무런 사고 없이 근무하다가 떠나면 된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는 '나'가 기간제 교사 나간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6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주인공인 '나'는 자신이 부임한 초등학교에서 의도치 않게 터지는 각 사건들을 구시렁대면서 아이들과 함께 해결해 나가는데, 특히 각 장의 마지막에 아이들을 향해 무심한 듯 내뱉는 말이 은근히 멋지다. 마치 <여왕의 교실>에서 "찌질대지마", "어리광 그만 부려~", "멍청한 것들"을 외쳐대던 마여진 선생을 떠올리게 하였다.

 

 

"참 딱한 녀석들이다. 너희들,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하기 싫은 게 있으면 도망만 칠 생각이야? 말해 두겠는데, 그런다고 해결된 정도로 인생이 만만하지 않아."

나는 두 사람을 옥상의 철망 곁으로 불렀다.

"아래를 봐, 사람들이 우글우글하지? 학교 운동장에도 있고, 길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 달리는 차 안에도 다 사람이 타고 있지. 너희들도 저 아래로 가면 저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야. 그런 작은 존재인 한 인간의 다리가 빠르거나 느리거나, 배에 흉터가 있거나 말거나, 세상 전체로 보자면 아주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물론 그런 사소한 일 하나로 웃고 놀리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 … 야노의 다리가 느리다거나 나카야마의 배에 흉터가 있다는 사실 따위 다들 금세 잊어 버려. 그런데 혼자 끙끙대며 고민하는 거,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희들은 그보다 훨씬 더 스케일이 큰 것을 생각하란 말이야. 어떤 일이건 도망치면 안 돼. 도망쳐서 해결되는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어."(185~6면)

 

이 소설 한 편 한 편이 정말 너무 재미있다. 그리고 다른 추리 미스터리에 비해 너무 난해하거나 또 비비꼬아 읽는 이로 하여금 전혀 헷갈리지 않게 사건의 내막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해 주고 결론도 명쾌하게 난다. 추리 소설을 많이 즐겨 읽는 편이 아니라, 추리 소설 작가에 대해 주의 깊게 안 살폈는데, <비밀>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었던 사실을 알고,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사실 그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런데 이름만 되면, 알만한 작품들 중에 그의 작품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의 필력에 다소 놀랐다. <여왕의 교실>를 재밌게 봤거나 혹은 휴가지에서 읽을 책을 정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