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신천하(功臣天下), 공신(功臣)들의 나라, 중종시대

 

오랜 가뭄 끝에 단비 같은 소식이 들렸다.

“임금이 쫓겨났다.”

 

연산의 무도와 패악, 폭정에 고통받았던 사대부와 백성들은 기대와 희망으로 들떴고, 반정으로 연산을 몰아낸 주역들은 자신들이 담당해야 할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폐주 연산의 시대를 마감하고 시 시대를 열었으니, 새 시대를 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폐주에 의해 자행된 부당한 조치들을 바로 잡고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을 신원하며, 폐조의 구습을 타파하는 것입니다.”

반정의 주역들은 “연산 이전으로의 복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그런데 중요한 개혁과제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바로 연산 시대 연산군의 협력자들에 대한 청산작업이 그것이었는데, 문제는 반정의 주역들 거개가 연산의 총애를 받으며 누릴 것을 다 누린 이들이란 사실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이른바 청산 대상들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데, 새 술을 묶은 술이 가득 들어 있는 헌 부대에 담는 꼴이었다.

중종반정 6일 만에 정국공신이 책봉되었다. 그런데 너무 많은 것이 사단이었고 엉뚱한 이가 공신에 올라 있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자격이 없는 부적격자들 말고도, 핵심 공신들의 자제, 형제 친인척들까지도 대거 포함이 되어 있었다.

 

중종,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는 변덕스러운 형 연산 밑에서 살아남는 길은 오직 몸을 한껏 낮추는 것밖에 없었다. 왕자 시절의 대부분을 칼날 위에 선 심정으로 극도로 조심하며 보냈던 그였다. 어느 날 밤, 갑자기, 예정이 없던 임금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조강지처(糟糠之妻)조차도 지킬 힘이 없는 이름뿐임 임금이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 동안은 형님 연산의 눈 밖에 나지 않게 하는 게 최우선 목표였는데, 이젠 형신 대신 대신들의 눈 밖에 나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공신들은 나이가 많았고, 중종은 젊었다. 공신들이 하나 둘 씩 세상을 떠나자, 중종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눈치를 봐야 할 대상이 없어진 것이다. 제대로 왕 노릇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진 것이다.

 

조광조의 등장과 새로운 시대, 그리고 몰락, 조선왕조는 이렇게 중종의 시대를 지나서 다시 새로운 시대를 향해서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