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황금시대, 피로 일으킨 나라를 문으로 다스리다.

조선은 세종시대를 맞이하면서 무(武)보다는 문(文)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그 중심에는 수불석권(手不釋卷)의 군왕 세종이 있었다.

원래 세종은 왕이 될 수 없는 왕자였다. 태종에게는 장자로 왕세자인 양녕대군이 있었고, 차자 효종, 그리고 셋째 충녕대군이 있었다. 세종은 태종의 삼남인 충녕이다.

서열상으로는 충녕은 왕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두 형의 양보와 지지로 조선의 군왕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왕 노릇은 처음부터 호라호락하지 않았다.

 

이중권력,

세종은 22살에 갑작스럽게 보위에 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태종이 죽고 나서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라 버젓이 살아 있는데서 왕위에 오른 것이다. 조선에는 왕이 두 명이 되었던 것이다. 세종은 금상, 태종은 상왕. 뜻밖의 상황으로 인해 세종과 조정대신들이 태종의 의도를 알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면 문제였던 것이다.

난세를 헤쳐 오며 당대의 영웅들을 모두 제압하고 보위에 올라 신생 조선을 반석(盤石)에 올려 놓은 이가 바로 상왕 태종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지존의 지위를 구축해 놓고 왜 물러나는 것인가? 이제 춘추 52세. 아직은 왕성하게 일할 수 있는 때이건만, 도대체 왜? 원래 군왕이란 눈을 감는 그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임기를 다하는 법이었다.

그런데 세종 전의 세 임금이 모두 생전에 보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다. 태조, 정종, 태종 그런데 태조와 정종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종 이방원에 의해 쫓겨난 것이나 다름없다. 태종은 앞서의 두 임금과 달리 스스로 물러난 것이었다. 부자간의 권력분배, 이중 권력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랬다. 태종은 역시, 정치 10단의 이방원 다웠다.

“배 비록 물러나지만, 주상이 서른 살이 될 때까지는 군사와 관련한 일은 내가 직접 처리하고 그 밖에도 나라에 중요한 의논에는 참여하여 주상을 도울 것이다.”

그러나 이중권력은 끝났다. 권력은 온전히 태종 이방원 한 사람의 것이었던 것이다. 세종은 자기 목소리를 죽이고 철저히 몸을 낮춰 모든 것을 상왕의 뜻을 따랐다. 조선후기 사도세자 또한 자신이 왕이 될 때까지 영조와 반목하지 않았더라면, 뒤주에 갇혀 죽는 참담한 일은 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태종의 세상도 세종 4년에 비로소 눈을 감음으로써 막을 내리게 되고 바야흐로 세상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게 된다. 세종실록의 세종에 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세종은 이미 아버지 태종에게 수업을 받으면서 튼튼하게 단단하게 준비된 왕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