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인문학이 필요한 사람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아니다."

난 인문학 책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책 <인문학은 행복한 놀이다>를 참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전형적인 한가지 주제로 다른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구성을 가지고 있지만 뭔가 기타 책들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점을 가지고 있다. 일단 저자의 약력을 보니 그렇다. 그는 늘 작가가 되기를 소망했던 사람으로 결국 전업작가가 되었다. 많은 글쓴이들이 꿈꾸는 삶을 살고 있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즐긴다고 하니 그러한 모습이 왠지 나와 많이 닮은 것 같아서 이 작가의 책이 과연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졌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텍스트를 텍스트 그대로 받아들인다. 물론 궁예의 관심법을 터득하지 않고서야 말안하는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다 알 것이며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은 작가의 글 속 의도를 다 어떻게 알아내냐 싶다만은, 그래도 나는 책을 읽을 때 구석구석 파헤쳐보는 것이 좋다.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면 글쓴이가 글을 쓰던 당시 시대상황이 어떤건지…. 책을 읽다가 내가 떠올린 그 생각들을 알아보느라 책 읽기를 중단하고 꼬리에 꼬릴 물고 다른 일을 하게 될 때도 종종 있었다. 이 책 속에서 저자가 언급한 책들은 대부분 내가 좋아한 책이다. 혹은 아주 오래 전에 읽어서 또 한 번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이 든 책도 있었다.

" 일주일에 딱 한 번이라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문학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왜 사람들은 인문학을 꼭 어렵고 고루한 것이라고 생각할까? 예전에도 언급했듯이 '인문'이라는 말이 한자어에 어렵게 느껴져서 그럴까? 난 세상 말들중에 가장 오해를 많이 받는 분야가 인문학과 철학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 속에 바로 윗 부분의 말이 참 좋고 공감이 같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에겐 무조건 인문학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점.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인문학은 행복한 놀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이렇게 책을 쓰게 된 것이다.

많은 책들을 보다보면 나의 인생과 가장 직결되어 있는 부분들을 발견하곤 한다. 이 책에선 그러한 것들을 가족, 연애와 결혼, 학교와 공부, 일과 직업, 인터넷으로 분류하여 많은 문학 작품을 빗대어서 이야기한다. 이렇게 다른 작품을 소개하는 책은 여러 책을 함께 읽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여기서 소개된 책(혹은 만화나 영화 등)들은 별로 어렵지도 않고 제목만 들어도 다들 알만한 유명한 작품들이다. 저자가 연애와 결혼 부분에서 소개한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을 소개하며 언급한 부분이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건 불완전한 결혼이다. 사회적 역할로서 주어지는 결혼은 남편과 아내라는 정해진 직책을 강요한다. 노라가 말한 인형 노릇과도 같다. 남편과 아내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른 채, 주어진 배역을 감당하는 데만 급급해진다. 그러다 어떤 일을 계기로 인형의 집은 깨어지고 만다.

- 122p

이 책은 내가 좋아하면서도 늘 씁쓸해서 자주 찾지 않게 되는 책이다. 고결하지만 거북한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내가 최근 가장 고민하고 있는 부분인 일과 직업에 관한 부분에서도 많은 생각의 전환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영화 <워낭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나도 이 영화를 보았다. 할아버지와 40살 먹은 늙은 소, 얼마 전 할아버지도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봐서 그런지 더 마음이 시큰해졌다. 또 우화 <개미와 베짱이>를 소개하며 이야기한 미겔 데 세르반데스의 『돈키호테』에 대한 이야기. 진정한 일과 그에 반대되는 휴식 즉 놀기. 어떤 곳에 중점을 둬야 하는지를 고민한적은 있었지만 두 가지를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를 생각한 적 없었던 내겐 큰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 장 인터넷에서 소개된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참 인상깊었다. 생각해보니 난 걸리버 여행기를 어릴 때 동화로만 접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어찌보면 간단한 이 책에 우리가 사는 세상, 특히 현재 없어선 안될 것처럼 보이는 인터넷 세계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과연 이 세상엔 '야후' 뿐일까? 그렇다면 만약 '야후'가 판치는 이 세상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할까?

"가치관이 달라진 사람은 삶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책을 읽으면서 혁명처럼 엄청난 변화는 아닐지언정 지금 내 머릿속을 잔뜩 채우고 있는 온갖 세속적인 것들에서 조금은 탈출구를 찾고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처럼 변화구를 던질 수 있길 소망하게 되었다. 평소 인문학을 사랑하고 인생에 대해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생각하는 나였지만 최근들어 조급한 마음에 자꾸 나를 속박하고 궁지에 몰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양의 수명을 받았다면 같은 조건과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지는 내가 정한다. 똑바로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