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남자. 그리고 그 노래를 들으며 숨겨진 사랑의 아픔을 한눈에 알아보는 여자. 서로의 아픔을 음악이라는 공통분모에 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 <원스> 라는 영화를 봤을 때 한 동안 가시지 않는 여운에 영화정보를 몇 번이고 뒤적이곤 했다. 극적인 사랑도 대단한 반전이 숨어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영화로 전해지는 깊은 울림은 오래도록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 아일랜드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 때까지 관심도 지식도 없었던 아일랜드라는 곳에 흥미가 생겨났다. <두 개의 눈을 가진 아일랜드> 는 그렇게 아일랜드에 반해버린 내게 설렘이라는 기분좋은 두근거림을 선물했다.

일단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삼은 여행기라는 것이 신선하게 와 닿았고, MBC 드라마 ’ 아일랜드 ’ 의 ost로 유명한 두 번째 달이 그 여행에 함께 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내 호기심을 발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저자 임진평, 두 번째 달이 만든 5인조 아이리시 트래드 밴드 ’  바드 ’ (BARD) 그들은 2007년 여름 아일랜드로 음악여행을 떠난다. 그들의 처음 여행의 목적은 바드의 음악 다큐멘터리 제작이었다. 그리고 임진평 감독은 1시간 남짓한 다큐멘터리에서 모두 펼치지 못한 아기자기한 풍경들이 아쉬워 그 이야기들을 책에 담기로 했다. 그러니까 <두 개의 눈을 가진 아일랜드>는 바로 아일랜드의 살아 숨 쉬는 전통과 음악을 찾아 떠난 바드와 임진평 감독의 여정을 다룬 음악 다큐멘터리의 제목이자  못다한 화면 밖의 이야기 꽃이 풍성하게 담긴 책의 제목인 것이다.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첫 번째 파트는 ’ It’s a long road ’ 라는 컨셉으로 영화감독이자 작가로 살아가는 저자 개인의 무수한 체험을 통해 얻은 메세지들과  아일랜드를 꿈꾸게 된 계기. 그리고 여행을 대하는 소박하지만 남다른 시선들이 자리하고 있다. 두 번째 파트는 ’ Two-eyed IRELAND ’ 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으로 두 번째 달 바드의 여정을 따라 음악 다큐멘터리에 담겨 나가는 시선으로 페이지가 넘어간다. 길거리 연주를 하면서 여행 경비를 벌고, 각 도시마다 즐비한 음악축제에 함께 하며 아일랜드의 음악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전통을 향한 그들의 애정어린 시선을 단순히 여행자로서 관조적 시선을 넘어서서 아일랜드의 일상으로 하염없이 파고들어 가고 있다.

책을 읽기 전 조금의 망설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요즘 넘쳐나는 것이 여행기이고, 한 동안 여행에 대한 목마름으로 관련 분야 서적만 열독하고 있었던지라 행여나 스토리가 진부하고, 따분하면 어쩌나 걱정아닌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여행은 아일랜드의 전통과 음악이라는 분명한 목적과 가야할 길이 정해져 있었던 만큼 산만하게 주절주절 떠들어대지 않고, 전달되는 메세지 또한 명확했다. 그에따라 다분히 감성적인 감정늘어놓기로 끝나는 것이 아닌 아일랜드인에게 전통이란 또 음악이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북서쪽 끝. 영국옆에 자리한 섬나라. 오랜 핍박의 세월을 견뎌내고,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손꼽히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미지의 세계로 다가오는 곳. 외국 관광객들에게 가장 친절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한없이 푸르른 지평선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곳.  저자에게 아일랜드란 가 보지 않은 곳이었지만 낯설지 않았던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책 속 저자와 친구의 대화처럼 나이가 들면서 가장 눈에 띄게 작아지는 것은 꿈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꿈을 꾸었는지 조차 망각하고, 잊어버리고 산다. 아니, 어쩌면 잊었다기 보다 잊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린 너무도 쉽게 꿈이라는 조각들을 놓아버리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임진평 감독과 바드와 함께 했던 아일랜드의 전통과 음악여행에는 딱히 뛰어난 감각적 표현이나 대단한 특별함이 담겨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만큼 여과 없이 포장 없이 아일랜드 그 자체를 담백하게 담아내고 있다. 어쩌면 우리와 너무도 닮은 그들의 아픈 역사 때문일까. 책을 덮으며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아일랜드, 그곳은 자유다. 떠나고 싶었던 힘겹게 억누르고 있던 여행자의 삶이 그리워진다. 언젠가 한 쪽 눈으로는 과거를 보고, 다른 쪽 눈으로는 현대를 볼 줄 아는 두 개의 눈을 가진 아일랜드에 서서 거리의 음악가들이 들려주는 달콤한 선율 속으로 빠져들어 있을 나를 상상한다. 

『 벨파스트의 유서 깊은 펍의 벽면에 쓰여 있던 글귀가 마음에 남았다. 두 눈을 모두 과거를 돌아보는 데 쓰는 나라나 민족은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지혜로운 나라(민족)는 바로 한 눈으로는 과거를 돌아보되, 또 다른 한 눈은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 남겨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아일랜드가 지난 시절의 상처를 딛고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올라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쩌면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되돌아보는 눈과 그리고 현재와 함께 희망찬 미래를 내다볼 줄 하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