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빠진 날 세상이 두렵지 않았다. '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그 짧은 한 줄 글귀의 울림이 한 동안 마음을 울려대며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라는 사람도 책에 빠졌다면 빠진, 나름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일진데 이 사람은 대체 책에 얼마나 빠졌길래 세상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걸까. 그렇게 다른 어떤 것도 볼 것 없이 그 한 줄에 매료되어 이 책은 내 책장 한켠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보게 된 책의 제목, 깔끔한 화이트 칼라의 표지가 담백함을 더 한다. 그리고 중앙에 자리잡은 멋스러운 제목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

사실 비블리오필리라는 말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비블리오필리가 뭘까. 한참을 중얼거렸다. 뭔가 굉장히 멋진 어감임에는 분명했다. 그리고 바로 그 뜻이 궁금해졌다. 이 책은 이렇게 처음부터 궁금증과 참을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면서 독자의 손을 책 속으로 끌어내는 신비한 힘을 지녔다. ‘비블리오필리’ 란 책을 독립된 물건으로서 감상하고 수집하는 취미를 뜻한다고 한다. 멋스러운 어감 만큼이나 굉장한 뜻을 지닌 말이다.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 이 책은 이렇게 책 속에 푹 빠져 있는 저자가 매일경제신문 출판면에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코너 ’허연의 북카페’ 에서 소개 되었던 이야기들을 모아서 출판한 것이다. 『체 게바라 평전』부터 『반고흐, 사랑과 광기의 나날』까지, 저자는 세상의 수많은 책들 중에서 인상 깊었던 책 166권을 골라 역사, 인간, 인생, 문화라는 네 가지 테마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또 한번의 이 책만의 독특한 매력에 취한다. 이미 그에게 접수당했다는 것만으로 엄선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고, 오랜시간 지내온 문화부 기자생활로 자연스레 체득한 그야말로 내실이 튼튼한 책들의 모음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때로는 촉촉한 시인의 감성으로, 때로는 기자 특유의 통찰력으로 활자에 목마른 이들에게 시원한 청량음료가 되어주며 그가 엄선한 책들은 편식이 심했던 나같은 사람이 그 동안 맛보지 못했던 영양가 높고 다양한 책의 맛과 향기를 선사해 주었다.

자칫 어렵고, 지루하게만 느껴질 수 있었던 정치나 사회, 인물들의 이야기를 저자는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친절하게 때로는 촌철살인의 말을 던지며 나를 책 속으로 불러들였다. 스스로도 고백하건데 이런 분야에 문외한이었고, 관심조차 없었던 지라 책을 읽기 시작하며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염려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그가 들려주는 책과 인생의 이야기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 할 수 있었다. 내가 이토록 저자의 감성에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책에 대한 무조건적인 설명이나 찬양보다는 저자가 들려 주는 이야기들이 결코 현실에서 동떨어지지 않은, 현실적인 삶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의 글을 통해, 그가 들려주는 책의 이야기 여행을 통해 나 역시도 차츰 오랜시간 방황하고 고민했던 인생의 답을 구할 수 있었다.

책 속에 풍덩 빠진 남자 ’허연’  저자에게 책이란 활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위대한 책의 힘을 실감하고, 세상에 맞서는 것이 결코 두렵지 않았다던 그의 말. 처음 나를 흥분시켰던 그 말이 책장을 덮은 지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에게 책이란 가장 훌륭한 스승이자 친구이다. 그 사랑이 넘치다 못해 대학시절 학교 식당의 비빔밥과 ’에스라 파운드’의 시집 한 권을 바꿔 끼니는 챙기지 못 하면서도 책은 절대 손에서 놓지 않는던 그. 책과 함께 울고, 소년에서 어른이 된  그의 인생길, 그 길에는 언제고 묵묵히 그와 함께 걸어갈 수 많은 책들이 함께 할 것이다.

『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할 때, 일상의 피곤함이 턱밑까지 차오를 때, 한시를 읽으며 삶의 진정성을 일깨우고, 단정한 산문으로 생활의 감각을 되찾았다. 사랑의 통속성은 인생의 보편성을 긍정하게 했고, 위대한 인간의 생애는 이 세상을 한없이 작아 보이게 만들었다. 책에 빠진 날, 세상이 두렵지 않았다. 』

『 눈물은 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에 있는 것인가. 눈물이 마음으로부터 눈으로 나온다면 모든 물은 아래로 흐르는데 왜 유독 눈물만은 그렇지 않은가. 마음은 가슴에 있고 눈은 위에 있는데 어찌 아래로부터 위로 가는 이치가 있단 말인가.’ 작자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 눈물이 마를 날 없는 시간을 보내다 문든 이런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모든 중력을 무시한 채 가슴 깊은 곳에서 위로 솟아 눈으로 나오는 눈물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함께 인생을 산 아내를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책 한권을 만났을 때, 그 자체만으로 행복할 때가 있다. 이 책을 만났을 때 그런 느낌이 들었다.  』

『  사랑에 빠진 한 여자. 그 여자의 나이나, 직업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사랑의 보편성 안에선 아무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아니 에르노 역시 새로운 창(窓)을 만났다. 그녀는 사람들에 대하여 연민과 고통과 우정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녀는 사랑에 빠지면서 일없이 공원 벤치에 누워 있는 사람들이나 오후 시간에 은밀히 외간 남자를 만나거나 통속소설에 빠져 있는 여자들까지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삶의 보편성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렇다. 사랑의 열정은 소설의 제목처럼 단순하다. 그래서 아름답고 위대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