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해오면서 한번도 관사에 관해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했던 맨투맨이나 성문종합책에서도 관사편은 그저 부록 정도로만 인식하고 대충 넘겼던 기억이 있다.
우리말에는 없는 관사가 영어에는 등장하는데, 왜 열심히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그러고보니 관사의 규칙이 너무도 단촐(?)해 보여서 였던것 같다. 
셀수있는 명사 하나를 지칭할때 a/an을 사용하고, 세상에 유일무이한 것에는 the를 사용한다는것. 또하나, 화자도 알고, 듣는 이도 알고 있는 사물을 가리킬때도 the를 사용한다는 것. 
이렇게 적고보니 단 두줄로 마무리되는 관사의 내용이 전부인것만 같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번뜩 떠오른 의문 또한 a와 the만으로 책 한권이 완성될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나의 지식으로는 단 두줄로 요약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내용이 생각보다 재미있다. 
기본 개념은 비교적 간단하다. a/an은 사물의 윤곽을 확실히 그릴수 있는 대상을 지칭한다. 
the는 여러개중에 특정한 하나를 지칭할때, 혹은 서로가 알고 있는 대상을 지칭할때 사용한다.


물론 문법에는 예외가 늘 존재한다. 
관직이나 신분을 나타내는 단어가 보어가 될때는 무관사...즉 관사를 사용하지 않는다.
We elected him captain. 우리는 그를 주장으로 뽑았다.라는 문장이 좋은 예가 될것이다. 
또한 식사때도 관사를 쓰지 않는다. 
have breakfast / have lunch / have supper등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을 먹느냐에 집중하지 않고, 언제 먹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또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단순히 윤곽을 그릴수 있는 사물에만 관사가 사용되는것을 넘어서서, 일정한 시작과 끝이 있는 증상에도 쓰인다는 사실이다. 
fever은 '열'이다. 열은 얼핏 윤곽이 없어서 관사 사용이 어려워보인다. 하지만 열이 나기 시작함과 사라지는 것은 시작과 끝이 있다. 그래서 관사를 사용해 I have a fever.라고 말한다. 
cough(기침)도 마찬가지. I have a cough.
이와 같은 맥락의 단어로는  a pimple / an itch등이 있다. 
그럼 설사는 어떨까? 설사가 시작되고 끝나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관사를 사용해야할것만 같다. 하지만 설사는 그들의 관점에서는 그저 윤곽이 없는 액체에 불과하단다. 그래서 관사가 없다. 


그리고 저자가 단적으로 비교한 한국말과 영어를 보면 새로운 시각을 가질수 있어서 좋다. 
우리말은 상황과 분위기로 유추해서 대화를 이끌어 갈수 있고, 다소 부정확한 표현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구체적인 말을 상대로부터 끌어낼수 있는 모호한 질문들로도 대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오늘 학교 어땠어?"라는 짧은 단어들만으로도 궁극적으로 오늘 하루 학교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볼수 있고, 구체적인 대답을 얻을수 있다는 뜻이다. 조사를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말이 통하니 외국인들에게 한국말은 영어보다는 습득이 용이하다고 한다. 
이에 비해 영어는 보다 구체적인 문장을 만들어야하고, 분위기나 정황을 통해 이끌어가는 대화가 아니란다. 이러한 관점을 잘 반영하는 것이 바로 영어의 관사가 아닐까 싶다. a와 the를 적절히 사용해야하고, 관사의 사용만으로도 문장의 뜻이 전혀 다르게 해석될수 있으니 말이다.
어찌보면 그들의 세계관은 무척 객관적이고 담백하다. 그래서 영어 공부를 하다가 지루할때 이런류의 색다른 시각을 담아낸 책을 접하면 신선한 기분을 얻을수 있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