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읽은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에서 빌 브라이슨은 파리를 여행할 때 산책길에 노트르담 성당과 마주한 센 강 건너편에 있는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에 들른다. 빌 브라이슨이 거기서 본 것은 아주 임대료가 비쌀 것 같은 상점에 영문학서만 파는 전통이 오래된 서점이 있고, 이상하게도 책을 사가는 사람보다 죽 치고 앉아서 읽고 있는 사람이 많고, 어떤이는 마치 자기 책을 읽다가 다시 책장에 꽂는 마냥 한쪽 귀퉁이를 접는 발칙한 행동까지 하는 이 서점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럼 다음에 읽을 책은 당연히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에 대한 내용을 적은 이 책이 아니겠는가?....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이 책을 읽기로 마음을 먹은 것도 있고 말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캐나다 오타와의 지방신문의 사회부 기자로 일하던 저자(제레미 머서)는 자신이 발간한 범죄 기술(?)을 다룬 책때문에 범죄자로부터 협박을 당하게 되고, 캐나다의 삶을 급히 처분하고 파리로 도피를 간다. 점점 가진 돈도 탕진해가고 목적의식도 사라져갈 즈음에 <세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에 우연히 들르게 되고 이 서점에서 숙식을 해결(우아한 숙식은 아님)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내용을 적고 있다.

 

이 책에는 서점의 모습에 대해서 약간의 삽화가 있긴 한데 이 삽화가 너무 여성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실제 모습은 어떠한가?라고 검색을 해보았더니 아하 진짜 이런 모습이구나.... 이 서점은 <비포 선라이즈(비포 선셋?)--둘 다 보질 않아서>의 배경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 책은 1인칭 화법으로 저자(나)를 중심으로 적는데, 읽는 나에게 주인공은 이 서점의 주인 할아버지인 "조지 휘트먼"으로 느껴졌다. 완벽한 공산주의자이며 무정부주의자인 조지는 작은 사회주의 유토피아인 이 서점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확인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 내용에 의하면 실제로 중국에서 본국에 <세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분점을 만들자고 제의를 한 적이 있다고도 한다. 조지는 <줄 수 있는 것은 주고, 가질 것은 가진다.> 이런 모토아래에 잠자리가 필요한 모든 작가(의 꿈이 있는)들에게 서점의 장소를 내어준다. 달리 숙박시설이 있는 게 아니라 서점 바닥에서도 자고, 서점 내에 간이 침대들이 놓여있다. 그냥 거기서 자고, 서점 일을 돕고,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으며 각자의 꿈을 향해 치열한 젊은 시절을 보낼 뿐이다.

 

원래 이 서점은 실비아 비치가 1919년 파리에 영문학 서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게를 열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들을 출판하게 한 역사적인 곳의 2부 인생이라고 하면 되겠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나치에 의해 서점을 문을 닫게 되고, 실비아 비치는 수용소에 수감된다. 전쟁이 끝나고 헤밍웨이가 서점의 점거를 푸는 데 앞장서지만, 실비아 비치는 은퇴하고 만다. 그리고 10년 후에 인근에 미국인이면서 여행가이고, 몽상주의자이며 공산주의자인 조지 휘트먼이 <르 미스트랄>이라는 서점을 오픈한다.  무료로 잠자리와 음식(매 끼니는 아니고)을 제공하고 무상으로 책을 읽게 했던 이 <르 미스트랄>은 실비아 비치가 죽고 나서 <세익스피어 & 컴퍼니>로 상호를 바꾸고 실비아 비치의 고서를 다 사들인다.

 

빌 브라이슨이 궁금했던 이 서점은 이 비싼 땅에서 어떻게 운영되는가?

일단 임대가 아닌 자가 상가이며 조지는 아주 검소하여 달리 큰 비용을 지출하지 않기 때문에 책을 사기 위한 돈을 적립할 수 있었다. 또한 무료로 재워주는 사람들은 아침에 서점 일을 알아서 잘 거들어서(계산대도 아무나 잘 맡고--물론 일정 수의 도둑은 항상 존재하며) 운영비용도 줄이고, 워낙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서 관광객들이 꾸준히 사가는 책들도 있어서 적자는 아닌 것 같다. 이 서점은 내부에 도서관도 있어서 무료로 책을 볼 수도 있다.

 

시간이 멈춰진 파리의 고서점이라는 한글 제목은 원제보다 더 적절하게 내용을 표현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남편에게 "응 조지는 말이야. 공산주의자래. 아하..어떻게 이런 사고를 하면서 이런 방식으로 서점을 운영할 수 있지? 자본주의는 절대로 이해 못할거야" 이런 말을 하면서 너무도 재미나게 이 책을 읽었다. 야니가 좀 커서 우리 가족이 파리에 간다면 분명히 <세익스피어 & 컴퍼니>에 들러서 우리는 반나절을 책 구경을 할지 모르겠다. 가능하면 홍차 파티때 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사족을 붙인다면

이 책은 표지도 멋스럽고, 책도 가볍고!, 글자 크기도 크며, 여백으로 종이를 낭비하지 않고, 냄새가 나지도 않으며, 무엇보다도 번역이 깔끔하다. (물론 저자도 글을 재미있게 썼다.) 누가 번역을 했는지 몇 번은 더 확인한 것 같다. (굳이 흠을 잡으라면...출판사가 시공사라는 것? 이젠 그런 것도 초월하기로 했다.)

 

2009. 3. 3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