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Picasso peint Guernica(2010) by Alain Serres

 

피카소 게르니카를 그리다(2012) 도서출판 톡

 

 

십수년전 학부시절 피카소에 대한 여러 평전과 작품해설서 등을 접하며 피카소를 탐색하다가, 혹자는 '그 천재 창조력의 근원'이라 할 소위 피카소의 '여성편력'에 싫은 마음이 생겨 더이상 그의 그림을 찾아 보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다. 그래도 언젠가 예술의 전당 피카소 전시회에 가서는, 창조에너지가 최고조에 있을 때는 거의 매일 판화 한점씩을 완성해 내었다는 그 미친 열정과 천재의 집중력에 경탄을 하고 돌아온 일은 있었죠. 그 후로,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도서출판 톡에서 신간으로 펴낸 <피카소 게르니카를 만나다>를 7세 아들과 함께 읽고 또 읽으면서 피카소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보다 2년전인 2010년에 <Et Picasso peint Guernica>라는 원제로 출간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생각을 '톡(toc)'틔워주고 마음속에 담긴 이야기들(talk)을 나눌 수 있는 책을 만드는 도서출판 '톡' (홈페이지 http://bbchild.co.kr/) 측의 번역자인 김현경 선생님은 프랑스에서 역사학과 인류학 전공을 하신 분이라 남다른 애정으로 원저자 알렝 세르의 아름다운 문체를 잘 살려 번역하였습니다.

 

프랑스나 미국의 amazon. com을 검색해보니, 나와 내 아들만큼이나 이 책에 열광하는 독자들이 많던데 간혹 별 다섯의 평점에서 별이 몇 빠진 평을 읽어보면 target audience가 10대 이상이라는 내용이 많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피카소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위인전이라거나, 대표작 게르니카라는 작품 해설서로 단순화 시키기에는 그 폭이 넓고도 깊습니다. 반전의식을 포함한 역사관, 예술품의 사회적 의미, 창조의 과정 등 읽는 이의 focus에 따라 이 책은 다양한 만족을 주며 여러 주제들을 아우르는 강점을 지녔습니다.

 

 사실, 책을 읽혀주기 전에는 살짝 걱정도 했더랬죠. 미술 동화 많이 읽어오긴 했지만 7세 아이가 이렇게 수준 높은 책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기우였습니다. 아이는 책을 덮자마자, 평소 늘 가고 싶어했던 남미의 잉카유적외 두 번째로 피카소 전시장에 가보고 싶다고 나에게 거듭 약속을 받아낸다. "엄마, 우리 가족도 꼭 여기 가보자. 이렇게 줄 서서 봐야되는거야. 그래도 꼭 가서 게르니카 보자. 약속." 거듭 강조하니 흐뭇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 책은 추보식 구성을 따르고 있습니다. 피카소의 출생부터 말년기까지의 그 화풍의 변화를 소개하는 와중에, <게르니카>라는 그의 대표작에 중점을 두고 작품 탄생의 계기, 창조의 과정, 그 작품의 사회적 의의에 대해 심화된 논의까지 아름다운 문체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책의 맨 첫장에는 일곱살때의 피카소의 사진이 실려있어요. 아버지가 화가인만큼 어려서부터 그리기 수업을 받을 수 있었던 특혜를 입은 피카소의 천재성은 그가 여덟살에 그렸다는 비둘기 그림에서도 확인되는데, 7세 아들녀석은 자기보다 1~2세 많은 나이에 피카소가 그렸다는 비둘기 그림에 경탄합니다. 아이와 <게르니카 피카소 그리다>를 다 읽기 전에 '천재'라는 단어부터 설명해줄 필요가 있었다. 아이와 나는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천재'의 가장 손꼽을 특성으로 '몰입성'에 동의하고 책을 읽어내려갔습니다.

 피카소 화풍의 '청색시대'와 '장미빛 시대'를 대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페이지입니다. 아이에게 굳이 어려운 용어를 들먹이지 않았어도, 아이가 먼저 느끼게 마련인가보다. "엄마, 이 아저씨는 왠지 말을 잘 안할거같이 생겼어." "그림이 신이 나게 느껴지니? 아님 왠지 조용한 느낌이니?" "조용한 느낌!". 청색시대 그림 중 한 편에 대한 아이의 소감.

 

16,17 쪽에는 <곡예사와 어린 광대>가 소개되어 있는데, 피카소가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시선으로 사물을 입체적을 재구성하는 시도를 양 페이지의 그림을 비교하면서 자연히 터득할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아주 잘 구성된 페이지로 꼽고 싶네요.

 

 22, 23페이지의 정중앙에는 3시간 15분의 악몽같은 공습으로 아비규환을 지나 페허가 되어버린 게르니카의 모습을 싣고 있습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아이에게 폭탄이라든지 전쟁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던 지라, 아들은 이 페이지에서 충격을 받은 듯 눈을 못 떼고 계속 제가 질문 세례를 해댑니다. 저는 이 작은 아이의 질문이 소중하고, 이 아이가 지금 품는 생각들, 어리지만 전쟁의 부당함에 화나고 반대하는 마음이 커서 어떤 큰 행동하는 힘으로 전환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성심 성의껏 대답을 해줍니다. 우리는 그렇게 책을 한페이지 한페이지 오랜 시간 이야기하며 읽었습니다.

피카소가 신문에서 참혹한 게르니카의 페허 사진을 접한 날은 1937년 5월 1일. 폭격이 있은지 며칠 후의 일이죠. 피카소는 민간인을 학살한 독일의 만행에 격분하여 그 분노와 반전의 메세지를 종이 위에 휘갈립니다. 상단 우측의 사진이 바로 그 5월 1일, 최초의 게르니카 습작입니다. 같은 날인 5월 1일 피카소는 학살의 무자비함과 고통의 절규를 보다 강렬히 전할 색과 선과 구도를 연구하며 계속 습작을 해나갑니다. 27페이지에는 무려 3장의 습작이 실려 있습니다. 당시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도라 마르가 열심히 사진을 찍어둔 덕택에 우리는 게르니카가 어떤 단계를 거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죠. 아들과 저는 피카소의 무서운 몰입력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고 책장을 계속 넘겼습니다.

우리는 책 32페이지에 소개된 게르니카의 진행 단계 그림을 보면서 달라진 점을 찾아도 보고, 왜 하필 황소나 말, 혹은 부러진 칼 들이 등장했는지 얘기 나누었습니다. 이 흑백의 페이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아이가 게르니카의 6단계, 7단계에서 달라진 점을 발견해냈습니다. 얼굴을 땅에 박고 죽어있는 듯 하던 사내가 하늘을 향해 쓰러진 모습으로 7단계에서 바뀌어 있습니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보다 강렬히, 그리고 많은 이들이 뇌리에 오래 남을 수 있는 방식으로 전하려고 고심에 고심을 하고 고치고 또 고치는 천재의 정신에 대해 아이와 함께 감복하였습니다.

 35,36,37,38 페이지는 가로 7.82m, 세로 3.51에 달하는 게르니카의 완성된 모습을 축소해서 싣고 있습니다. 작은 그림도 이렇게 강렬한진데, 미술관에서 실제 게르니카를 보면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에 대해 아이와 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pixar만화 캐릭터보러 미국 가자던 아이가, 이렇게 게르니카 보러 스페인에 가자고 조르게 되다니 다시금 기특할 따름입니다.

반전메세지가 강하고 독일군의 만행을 비꼰 피카소의 작품을 독일은 5년간이나 전시 금해버립니다 그래도 피카소 작업실의 등불은 계속 타올라서, 천재는 그리고 또 그립니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난후에, 피카소는 이제 게르니카와는 사뭇다른 비둘기를 많이 그립니다. "사람들이 부드러운 그림을 많이 보면 평화를 지키려는 마음도 더 커지리라(48쪽)" 는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부드러운 궁뎅이와 엄마의 젖가슴, 포동한 나체의 아이들, 그리고 비둘기...보고 있느라면 폭력 없고 창조만 있는 세상에 대한 기대도 새록 커집니다.

창조열정만큼이나 여성에 대한 애정 혹은 여성편력역시 강렬했던 피카소의 말년, 손주손녀 뻘의 자녀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모습도 사진으로 소개되어 있네요. "피카소는 그림으로 이야기 합니다. 자유와 평화가 살아 있고, 생명이 움트는 세상을 꿈꾸고 그리지요. (52쪽)"

 

2010년 11월 15일 <퍼블리셔스 위클리>에서는 《피카소, 게르니카를 그리다》의 서평을 실으면서 <게르니카>를 중심으로 피카소의 예술 세계 전반을 추적해 낸 작가 알랭 세르의 작업을 “예술의 혁신적인 힘에 대한 열정적이고 지성적인 입증”이라며 극찬했다지요. 이 책을 읽어보시면, 아이에게 읽혀보시면 그 극찬에 엄지손가락을 들게 되실 겁니다. 7세 아들과 이렇게 한권을 오래 함께 토론하듯 이야기하며 천천히 읽어보기도 처음이네요. 어떤 독자는 이 책을 10대 이상에게 권장이라고 평했지만, 저는 부모의 친절한 가이드만 있다면 미취학아이에게도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고, 어른들이 읽어도 그 지적인 분석과 아름다운 문체에 반하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