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BOT

 

의도적으로 아이들에게 환경 문제를 다룬 동화들로 reading list를 꾸려주고 있는데, <네가 해 줘, 캣봇>이라는 반갑고도 고마운 순수우리창작동화를 만났네요. 처음에 삽화만 보고는 일본작가, 혹은 러시아 작가의 작품일까 싶었어요. 마치 축제에나 쓰고 나올 법한 가면같기도 하고 민속인형같기도 한 캣봇의 캐릭터와 cat+robot=canbot의 합성어가 이국적으로 들렸거든요. 그런데 작가 정보를 보니 디지털컨텐츠디자인을 공부한 이후 어린이 책 만들기에 주력해온 강혜숙작가님의 최신작이네요.

 

http://www.sukuland.com 수쿠랜드

강혜숙 작가님, <캣봇>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개인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정말 다채로운 작품세계와 화려한 수상경력을 지닌 쟁쟁한 작가님이시군요. 2011년 프랑스에서 Le Prix Nord Isere 수상 (Bebe Lezard, Bebe Bizarre) , 2009년 볼로냐아동도서전 한국 대표 일러스트레이터 선정 등 일본과 한국, 프랑스, 스위스 등 여러 국가에서 수상한 경력만 보아도 강혜숙 님의 그림이 보편의 심미안에 호소하는 매력이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저도 홈피 들어갔다가 한시간을 그냥 보내고 그림 구경하며 강혜숙 님의 팬으로 자칭등극하네요.

기학학적인 디지털의 느낌도 있으면서 만다라의 정신성까지 함축하고 있는 듯한 그녀의 작품을 보며 '어어어...이야.'호들갑 탄성을 질렀더니 아들녀석이 이상한 눈으로 엄마를 봅니다. 그런데 정말 일러스트레이션에 천부적 재능과 독특한 감성이 느껴지는 걸 어쩌겠어요.

 

 

강혜숙 작가님이 꼬마친구들에게 인간의 탐욕으로 빚어진 환경재앙에 경고의 메세지를 전달해주려 창조한 캐릭터 캣봇은 사실 고양이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물고기 싹쓸이 전용 로봇이예요.

 

처음에 고양이들은 수영을 못하는 자신들을 대신해 물고기를 잡아주는 캣봇을 발명했지만 이내 편리함에의 도취는 탐욕으로 이어져서 소비 못할 만큼의 대량의 물고기를 캣봇을 시켜 잡아 나르게 되지요. 섬은 미처 먹지 못해 버려진 물고기로 오염되고 썩어나가는 물고기에 바다도 오염되고 고장나서 버려버린 캣봇들은 바다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폭풍이 치던 날, 파도가 캣봇과 함께 쓰나미처럼 섬을 덮쳐버리고 자업자득 고양이들은 섬을 울며 떠날 수 밖에 없네요.

 

굳이 해설을 더하지 않아도 7세 아이가 읽어내려가는 데는, 익숙한 인간의 모습을 투사해 볼 수 있기에 주제 이해에도 무리가 없었어요. 아이는 "물고기가 많이 필요하지도 않은데 계속 잡았다"는 고양이 자멸의 핵심 mistake를 파악하고 있더라고요. 아이 5살때 잡지에서 정어리가 그물에 걸려 몸부림치다 죽어가는 사진을 보고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할 정도였는데, 그래서인지 캣봇의 물고기 싹쓸이 전략에 아이는 나이 어리지만 분노하더라고요. 어른이 보아도 고양이의 모습은 문명의 이기를 발명하고 편리함을 취해 편히사는 인간의 영리함과 탐욕의 모습을 닮고 있어서 부끄러워진답니다.

강혜숙 작가님은 open ending으로 마지막 장에 "푸른바다 한가운데 다시 고양이 마을이 생길 수 있을까요?"하는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마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고장난 캣봇을 장난감 삼아 즐거이 노는 꼬마 야옹이들과 묵직한 궁둥이만큼이나 묵직한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무거운 상념에 젖어있는 얼룩이의 뒷모습이 대비됩니다. 섬의 파멸을 이끌 씨앗을 제공헀던 장본인으로서 얼룩이의 맘은 편치 찮았겠죠. 또한 고양이 섬이 생긴다 할지라도, 캣봇의 비극이 재차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더 심난했겠죠. 편리한데 기대고, 있어도 더 원하고, 착취하는 것은 인간 본성의 하나이니까요. 고양의 본성이기도 하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위 두 페이지의 그림이 매우 의미심장해 보였어요. 일부러 아이에게 대조해서 자꾸 보여주었어요. "발명에 열중하는 뽀글털 박사님이 멋있을까? 뒹굴뒹글 벌러덩 누워있는 박사님이 멋있을까?" 답이 뻔한 질문을 하며 두 페이지를 번갈아 보여주었어요. 사실, 아이의 계몽 목적보다는 엄마의 모습이기도 하고 우리 어른들에게서 익숙하게 보는 모습이기에 스스로 반성하려는 의도가 있었죠. 뽀글털 박사도 한때는 창의적인 창조욕과 그를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행동력을 지닌 멋진 분이는데 물고기의 맛에 취하고 편리함에 길들여져서 여느 뚱뚱보 게으른 고양이와 다름없는 추한 모습으로 전락했지요. 느끼는 바가 많았어요. 또한 탐욕에 젖은 고양이들이 더 많은 캣봇을 만들 때 쥐를 노예삼아 착취하는 그림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네요. 좋은 그림책은 요건은, 보면 볼 수록 그림이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거라 생각하는데 강혜숙 작가님의 <네가 해줘, 캣봇>이 딱 그 범주에 드네요. 

부록으로 캣 봇 만들기 도안이 있어요. 저는 아직 가위질이 서툰 아들에게 조금 아껴두자고 일어놓았어요. 너무 예쁜 캣봇을 망치게 될까봐요. 강혜숙 작가님은 복잡한 패턴에서도 단순미를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으신가봐요. 책장 여기저기에서 강혜숙 작가의 취향과 재능을 엿볼 수 있네요. 4-7세 아이들의 환경 동화로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