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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와 어부새

'가장 큰 영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어부와 어부 새>의 작가, 스테판 세네가는 공자를 인용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974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가 중국의 문화에 매료될 계기가 있었던 것일까요?
'가마우지 낚시'라는 중국 전통의 소재를 모티브삼은 <어부와 어부새>는 동양화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독자를 매료시킵니다. 수묵 담채화의 느낌을 내지만 먹이 아닌, 목탄과 수채물감으로 그렸다고 하네요. 그 여백의 미와 멀리서 관조하듯 '어부와 어부 새'를 줌 인, 줌 아웃 하는 구도는 한 편의 신비로운 무성영화의 느낌을 줍니다.

한 장에 두세 문장을 넘지 않는 길이의 글도 <어부와 어부 새>에 여백의 미를 더해줍니다. 둥지를 틀려고 중국 바다를 찾은 가마우지 한 마리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깃털이 흰 갈매기 무리는 가마우지를 환영하지 않았어요. 훌쩍훌쩍 울며 가마우지는 강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넓고 깊은 강에 혼자 떠가는 작은 가마우지의 모습에서 그 고독감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강에 물고기도 많고 물고기 잡기의 명수이니 가마우지는 배는 불렀지만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너무 큰 물고기를 삼켜 버린 가마우지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칩니다. 다행히 어부가 목숨을 구해주었지요. 이제, <어부와 어부 새>의 페이지는 가마우지 달랑 혼자가 아닌 마음씨 좋아보이는 어부가 함께 채웁니다. 보은의 뜻으로 어부의 낚시를 돕는 어부새. 이제 둘은 뗼레야 뗼 수 없는 공생관계가 되지요. 작은 물고기는 가마우지의 목구멍으로 쏘옥, 가마우지의 좁은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큰 물고기는 어부 몫이 됩니다.

<어부와 어부 새>는 단순한 줄거리이지만, 자꾸 곱씹어 보게 만드는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가마우지나 어부 할아버지나 외로운대로 혼자 살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로 인연으로 엮이니 가마우지는 더 이상 큰 물고기가 목에 걸려 죽을 위험에 처하지 않게 되었고, 할아버지 어부는 물고기를 충분히 잡을 수 있게 되었지요. 호혜적인 공생관계입니다.

갈매기들은 외면했던 검은 가마우지, 어부는 "너 참 대단한 어부이구나"하면서 그 존재를 긍정하고 장점을 응원해줍니다. 그렇게 자신의 특성을 다시 살피게 되면서, 가마우지는 이전에 몰랐던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게 되지요.

스테판 세네가는 중국에서 명맥을 이어 오는 전통 ‘가마우지 낚시’를 소재로 '인간과 동물의 평화로운 공생'과 '서로를 살려주는 관계'라는 아름다운 메세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 듯 합니다. 독자 팬메일이라도 써서 그에게 묻고 싶네요. '프랑스인이면서 어쩜 그리 중국적 소재를 잘 소화했나요? 중국에 가본적 있나요? 목탄과 수채물감으로 어떻게 수묵화 느낌을 표현해냈나요?' 묻고 싶은 점이 계속 늘어나네요. 그만큼 얇은 한권의 그림책에 생각할 거리가 많이 담겨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