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측 리뷰에서 '학교 채변 검사'를 언급하길래, 재미난 추억도 생각나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후반부 여러 페이지는 목이 메여와 꾹꾹 마음을 눌러서 천천히 읽었냈습니다. 소리내서 울뻔했어요. 아이도 꾹 꾹 눈물을 참으면서 '너무 슬프다'라고 합니다. 사실 아이는 <똥 보따리 우리 할매>를 통해 '할매'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어려서 친할머니께서는 '우리 강아지'라 절 부르셨는데, 아이에게는 그런 애칭조차 무척 생소한가봐요. 2000년대 출생 주민번호를 가진 '요즘' 아이답게 옛정서의 끈끈함을 모를 줄 알았는데, <똥보따리 우리 할매>에 대한 아이의 뜨거운 감동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그림동화 읽고 그렇게 심각해져 보기도 처음입니다. 동준이가 할머니 그리운 마음에 잠결에도 상상 속에서도 할머니를 불러내는 삽화에서는 동준네 할머니가 살아계시는 거 아니냐고 우기기 까지 하네요.

동준이에게 할머니는 후각을 파고들며 촉각으로 오감으로 기억되는 모성의 화신입니다. 달래, 쑥, 콩국수, 찐감자, 송편, 김치전, 꿀바른 인절미, 팥죽...할머니께 나는 냄새 이야기만 해도 동준이는 밤을 새울 수 있을 거래요. 할머니 사랑의 향은 구수하고 고소하고 달콤합니다. 아차. 할머니 사랑의 향에서는 구린 똥냄새도 섞여 나기도 합니다. 채변 봉투에 담아가려고 신문지에 싼 동준이 똥을 부지런하신 할머니께서 치워놓으시더니만, 귀여운 손주 선생님께 혼날까봐 동준이 똥을 손주 학교까지 퀵배달하셨거든요. 채변봉투가 아닌, 할머니 버선 한 짝에 그득히 담아서 말이지요. 어찌나 푸짐히 싸오셨는지 얼핏 만져도 물컹물컹 거려요. 라면 봉지에 담아서 실로 묶어서 다시 버선에 싸서 안전 포장을 했어도 그 지독히 구린 냄새에 동준이 담임 선생님께서는 당황하셨지요. 순식간에 '똥주니'라는 별명을 얻게 된 동준이는 더욱 당황했고요. 
 

창피한 마음에 뒷동산에 올라 한참을 씩씩거리며 우는데 눈에 들어온 세 글자 '김.동.준' 세 글자. 까막눈 할머니께서 공책에 써있던 동준이 이름자를 보고 또 보면서 버선 위에 바느질로 새겨 오신 거네요. 뭉클 뭉클합니다. 동준이는 그 버선을 버리지 않았어요. 중풍에 걸려 앓으시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던 날 밤, 할머니 곁에서 잠을 자던 동준이가 이야기 하거든요. "할머니가 버선에 똥을 담아서 학교에 왔던 날 기억나? 그 버선은 내 보물 상자에 잘 숨겨 뒀어. 할머니가 생각날 때마다 꺼내 볼 거야."라고요. 

 
할머니의 품을 파고 드는 동준이의 머리맡에는 눈깔 사탕, 왕사탕이 몇 개 놓여 있습니다. 동준이가 돼지 저금통 배 갈라서 사온 사탕이예요. "할머니 아프지 마. 어디 가지 마.....죽지 마.'하면서 드렸지만 할머니께서는 잡수시지는 못했나봐요. 그래도 동준이의 똥버선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웃으며 마지막 숨을 거두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