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아이.

책 사랑하는 엄마로서 책좋아하는 아이를 키워내기 위해 접하게 된 숱한 출판사 중에서 제가 유독 감사함을 크게 느끼는 출판사랍니다.

왜냐면, 부끄럽지만 제가 그림을 못그리고 미술 관련 어떤 활동에도 자신감이 없어요. 다른 건 흉내라도 내면서 아이를 가르칠 수 있는데 그림만큼은 그렇지가 않더군요. 그러던 차에 처음엔 미술 전공한 친구가 선물로 보내준 진선 아이 출판사 책을 접하게 되었고, 아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아는지라 그 뒤로 하나 둘씩 진선 책들을 만나 보았지요. 소녀의 창의 스케치북. 아. 정말 잘 만든 책입니다. 이 책 보고 너무 맘에 들어서, 아이 산후조리원 친구 7세 공주님들 다가오는 5월 생일 선물을 미리 <소녀의 창의 스케치북>으로 단체 구입해버렸습니다.

 

미술 못하고, 아이의 미술 교육 감도 못잡겠는 엄마로서의 콤플렉스때문에 유난히도 아이에게 여러 그리기 책들을 사주었더랬습니다. '오리기, 그리기, 붙이기'를 위시하여 여러 출판사들이 하나 둘을 내놓았을 다양한 미술 놀이 책들을요. 그런 책들이 '창의성'을 길러준다고 하면서도 어떤 정형화된 틀에서 아이들에게 그리기를 유도한다면 <소녀의 창의 스케치북>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의'를 길러줄 세상 유일무이의 책이 됩니다. 왜 유일무의냐고요? 책 맨 첫 페이지를 펴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을 남겨. 이제부터 이 책의 주인은 바로 너야!" 네, 맞습니다. 어떤 주인을 만냐느냐에 따라 <소녀의 창의 스케치북>은 수만가지, 수백만 가지 다른 모양이 될테니까요. 다시 말해, 이 책은 오직, 그 주인만이 그릴 수 있는, 책 주인의 유일무이한 창작집입니다.

 

7세 아이는 자기 이름을 적어놓고 나서, 살짝 긴장하는 눈치더군요. 이 예쁜 스케치북에 자기 이름이 떡하니 새겨있고, 이제 자신이 이 책에 숨결을 불어넣게 될테니까요. 행여 자기가 밉게 그릴까 그리기 전부터 소심히 걱정하더군요. 그림그리기를 할 떄의 엄마의 소심함을 닮아버렸네요.

 

이 책에는 페이지가 따로 매겨 있지 않습니다. 아무 페이지나 펴서, 마음에 드는 페이지라면 바로 거기가 시작 페이지가 되는 구조입니다. 매 페이지, 모든 그림마다 살짝 채색을 입고 있습니다. 모두 미완이지요. 그 나머지 부분을 아이가 채워나가며 완성시키게됩니다. 아이가 처음 고른 페이지는 찻잔그림 페이지였습니다. 하루평균 3잔이상의 커피를 족히 마시는 엄마를 늘 보아온지라, 찻잔 그림이 가장 눈에 들어왔나봅니다. 엄마에게 대접해줄 커피잔이라면서 red로 칠해주었습니다. 좀 더 우아한 무늬를 새겨주길 바랬는데, 그래도 아이가 색칠해준 커피잔에 커피 마시는 흉내내면서 고맙다하였습니다. 4세 딸아이는 뒤질세라, <소녀의 창의 스케치북>에 낙서를 해버렸습니다. '내 스케치북 망쳤네"하며 티격거리면서도 두 아이가 너무나 즐겁게 색칠을 해나갑니다.

 

  

 

전 처음에 <소녀의 스케치북>이라고 해서 약간 "공주풍"일 줄 속단했더랬어요. 반지 나오고, 드레스 칠하고 왕관 꾸미는..물론, 그런 소녀의 감성을 충족시키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페이지도 많지만, 이 책을 펼쳐보시면, 엄마아빠가 먼저 '엇, 나도 예쁘게 채색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거예요. 예를 들어 왼편의 고급스러운 다마스크 문양을 보세요. 너무나 세련되지 않았어요. 저도 이 페이지를 보고, 침실 커텐이랑 무늬가 비슷하네. 예쁘게 내가 그려봐야지. 했답니다. 물론, 아이에게 허락을 받고요^^

<소녀의 창의 스케치북>에서 발견한 또 다른 강점은, 그림을 그리고 상상을 하면서 아이가 자연스레 세계 문화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 책을 아이와 활용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이들이란. 단순히 채색하고 예쁘게 꾸밀 궁리만에 그치지 않습니다. "어, 엄마, 이 인형은 할머니 러시아 여행다녀오시고 나 사주신 인형이랑 똑같애. 맞지?" "엄마, 이 부채, 장식장에 있는 일본부채랑 비슷한 거다. 찾았다." 저 역시 아이가 이런 발견을 하리라고 예상도 못했다가, 아이 말을 듣고 보니 소녀의 창의 스케치북 여기저기에 문화적 코드가 많이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일본의 부채문양, 인도의 전통 의상 사리, 인디언들의 목각조각품 문양 등, 억지로 세계 문화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가 페이지를 채색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공부가 되겠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페이지들도 맘에 들었어요. 저희 아파트 단지에 봄이되면, 곤충이며 생태 관찰 단체 과외 받는 아이들을 볼 수 있어요. 한복 입은 생태교사가 미취학 아이들을 무데기로 데리고 다니면서 곤충이랑 풀들 관찰시키고, 그 뒤에는 학부모들이 수다를 떨며 따르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지요. 물론 의식있는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키고 싶어 하시는 과외 겠지만, 전 참 씁씁했어요. 곤충조차도, 풀관찰 조차도 저렇게 한복입은 분 따라 과외단체로 받아야 하는 세상이구나. 요즘 아이들이 주로 도시거주라서 곤충이나 벌레, 열매, 나뭇잎 모양 관찰할 새도 관찰할 마음의 준비와 예리한 자연감식력도 떨어지는 건 사실이죠. 전 그래서 이 페이지가 맘에 들었어요. 사실, 우리 아이도, '엄마, 이건 너무 어려워, 보고 그려야 해. 하면서 자연관찰 세밀화 책을 꺼내오더라고요.'그래서 제가 봄이 더 올떄까지 기다렸다가 칠하자고 했어요. 직접 밖에 나가서 나뭇잎이랑 풀밭의 곤충들 만나보고 그렇게 그리자고요.

 

 

<소녀의 창의 스케치북> 진선아이의 효자히트 아이템이 되겠어요. 책 욕심 많은 제가, 한권으로 만족을 못해서 단체 선물용으로 주문하고 이 책 퍼돌릴 생각을 하는데, 다른 엄마들 역시 마찬가지이실거예요. 사실 <소년의 창의 스케치북>도 있겠지만, 이 책은 성별 상관없이 강추입니다. 다 그리고 나면, 세상에 한 권 뿐인, 일기장 만큼이나 소중한 아이 상상력의 세계의 기록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