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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세명 째 키우면서도 '다복한 프로 엄마'일 것이라는 주위의 시선과는 달리 나는 스스로를 여전히 초보 엄마로 느낀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엄마됨(mothering, motherhood)'은 '프로/초보/낙제생'의 계단형으로 분류평가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이고, 내 안의 유전적 본능이 이끄는 대로 하게 되는 면이 있기에 '초보'라는 말보다는 '아이들에게 해줘도 해줘도 부족함을 느낀다.'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세 아이를 키워오면서 고집스레 육아서를 안 읽어왔다. 바쁜 와중에 책을 놓은 적은 없지만, 애써 육아서를 독서목록에서 제외해온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육아서들을 읽다보면, '엄마로서의 나의 결핍과 무능'이 더 도드라지고,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좋은 엄마/나쁜 엄마'의 이분 평가 도식에 내 자신을 우그러 넣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일상어처럼 만연된 '슈퍼맘, 프로맘, 좋은 엄마, 나쁜 엄마'의 분류어가 이 땅에 열심히 엄마노릇에 헌신하는 이들을 얼마나 위축시키고 있느냐에 대한 나의 작은 반항이었다. 육아서 멀리하기는.

둘째, 공전의 히트를 친 <베이비 위스퍼러> <슈퍼 내니 super nanny>등의 책과 프로그램은, 분명 잘 만들고 기획된 훌륭한 산출물임을 분명하지만, 그 핵심 메세지를 한국적 motherin에 적용하기에는 문화적 풍토차이에서 오는 삐걱거림이 있다. 예를 들어, 언급한 위 두 책에서 자녀교육의 핵심을 추려내라면 그것은 "규율 discipline"이라 할 수 있다. 7시에 양치질 하고, 8시에 베드타임 스토리 30분 갖고 8시 30분에 잠자리에 드는 리듬감 있는 삶. 물론 나 역시 꿈꾸는 아이의 일과 스케줄이지만, 통계상 전세계에서 취침시각 늦기로 유명한 한국 아이들에게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권고이다.

육아서에 대한 내 좁은 속단을 오은영 박사의 <아이의 스트레스>가 깨주었다. 이 책은 위 두 범주에 해당되지 않고, 속 시원하게 조목조목 엄마들과 아이들의 마음을 짚어내준 훌륭한 지침서라고 하겠다.

저자인 오은영 박사는 정신과 전문의이자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로서 '육아의 신'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아이와 엄마 양자 마음의 결을 잘 읽어낸다. 그리고 부드러운 공감에 그치지 않고,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카리스마로서 위기의 가정 위기의 부모관계에 해법을 제시한다. 나도 '육아의 신' 오은영 박사의 매직 카리스마를 익히 TV 방영물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를 통해 보아 왔던 터이다.

이 책이 여타 난립하는 육아서와 차별되는 가장 큰 요인은 저자가 실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임상경험을 가진 전문의라는 데 뿐 아니라, 엄마로서의 경험에 바탕한 뜨거운 진정성이 담긴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추천의 글에서 임기영 교수는 '암호 해독기 같은 책'이라 평했는데, 이 책의 추천 이류로 이보다 적당한 압축어가 있을까 싶다. 그렇다. '아이들의 생각과 느낌을 번역해 주는 암호 해독기 같은 책'.

여기서 제시한 해법 역시, 뭉퉁그려 일반화하여 적용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숱한 개별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조목조목 아이 스트레스의 유형과 그에 따른 아이의 마음, 부모의 대응 방안 등을 풀어내었다.

예를 들면, 동생이 태어나서 어마한 스트레스를 겪는 큰 아이의 스트레스를 children's voice와 mommy's voice로 나누어서 보여주면서 그 몰이해의 간격을 좁혀주고자 한다. 여기서 이 책의 두 번째 강점을 꼽을 수 있는데, 바로 그동안 어른들의 분석적이고 우월한 시선에서 놓쳤던 '아이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오은영 박사를 이를 두고 '아이의 목소리로 아이의 스트레스를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인상깊은 구절

너무 일찍 한글을 배운 것으로 불행이 시작된다. 한마디로 여덟살에 인생이 꼬여버린 것이다. 너무 이른 나이게 가르치다 보니, 아이가 잘 따라오지 않았을 테고 엄마는 '우리 아이만 바본가?'하는 불안감에 아이를 더 채근한 것이다.

대소변 가리기를 할 때......(중략)......."지지," '아 더러워" " 냄새 나"라는 말도 삼간다. 아이의 자존심이 상할 수 있다. 아이의 변을 처리할 떄의 표정도 더럽다거나 역겨운 표정도 삼가야 한다. 이 시기 아이는 '대변=나'라고까지 생각한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어릴 때는 아주 친해야 한다. 굉장히 가까워야 한다. 딱 붙어서 부둥켜안고, 비비적거리고, 끌어안고, 시도 때도 없이 스킨쉽을 하고, "나는 엄마가 제일 좋아. 나는 이다음에 커서도 엄마하고 살 거야."라는 말을 달고 살 정도로 서로 좋아하고 친해야 한다.

부모가 아이와 소통할 때 진솔하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아이가 버럭 화를 내서 부모가 짜증이 난 상황이라 가정하자. 꾹 참으면서 인터넷이나 책에서 본 대로 "알았어. 네가 속상해서 그런거 알아.'라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척하지 말라는 것이다. 몇 번그렇게 했는데도, 아이가 계속 울거나 화를 내면, 부모의 속마음은 '내가 이렇게 까지 말해주는데 쟤는 도대체 왜 저래?"하기 때문에, 갑자기 "야!"라고 소리치게 된다. .....(중략)........이러면 아이는 너무 놀랄 수밖에 없다. 5분 전까지만 해도 다 이해한다고 해놓고, 갑자기 엄마가 눈을 치켜뜨고 자기에게 소리를 지르니 말이다. (p.373)

세째, 이 책의 강점이자 특색은 아이의 스트레스 앞에서 당황한 경험이 있었을 부모라면 누구나 제 속을 들킨 듯 떄로는 화들짝 놀라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암호서 같았던 아이의 스트레스 표현을 이제야 해독했다는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는 데 있다. 정말 매 페이지마다 공감가는 문구가 여럿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제 3부에 해당하는 <아이와 스트레스 그리고 부모>라는 챕터가 좋았다. 아직 아이가 미취학생이므로 본격적인 공부 스트레스로 인해 씨름하지 않으므로, 제 2부의 이야기보다는 3부의 이야기가 당장에 더 유용한 까닭이다. 3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아이는 스트레스가 넘치면 신체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다양한 신호를 보내므로, 부모가 이를 무시하지 말고 해석하고 대처해주되, 스트레스를 무조건 부인하거나 없애려기 보다는 스트레스를 다루면서 아이가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라는 메세지이다. 부록인 <스트레스 제조 전문 부모 스타일>은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7가지 유형에 해당되지 않을지라도, 아이와의 관계에서 아이 존중해줄 때 주의할 부분으로 참조 가능하다.

MBC김주하 앵커, 예비아빠인 유열이나 아주대 의대의 임기영 교수 등 유명인사들이 추천하여서가 아니라, 이 책은 아이의 마음을 알고 싶고 현명하게 아이와 소통하고 싶은 엄마아빠라면 일독할 가치가 있는 고마운 책이다. 다만, 염려되는 부분이 있는데, '스트레스'라는 말 자체의 유포이다. 일전에 5세 짜리 여아 두명이 서로를 보고 "네 옷 섹쉬하다." "너도 섹쉬하잖아."라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사실 '스트레스 받아.'라는 말을 달고 사는 어른들도 많고, 스트레스라는 번역도 안되어 정착된 단어는 일상에 깊히 파고 들어서 우리네 삶의 고단함과 짜증을 집약해 던져내는 말이 되어 버렸다. 나 역시 스트레스니 스트레스 받아라는 표현을 간혹 쓰지만, 내 언어 용법을 반성하고 가급적 스트레스라는 말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뱉어낸 언어가 현실이 되어 나의 삶을 다시 규정해오기 떄문이다. 그러할 진데, 그 무시무시한 스트레스라는 용어를 갓난쟁이, 2세, 4세 9세 아이들에게까지 적용하다보면 '아이의 스트레스'라는 것이 현실을 치환하게 될까 두렵다. "야, 나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아." "나 우리 엄마 땜에 완전 스트레스야" 이런 말을 달고 살게되는 어린이들의 세상이라니. 왠지 씁쓸한 쓴웃음만 나온다.

좋은 책을 써주신 오은영 박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