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라는 책소개 글을 먼저 읽고나서 책을 펼친 탓인지,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영화 한 편이 있었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이 연출하고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 ‘디 아더스(The Others)' 라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외딴 저택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마지막 반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의 무대공간도 외딴 저택이며 이야기의 중심에는 남매가 등장한다. 이런 유사한 내용으로 인해 영화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 영화의 내용을 떠올리면서 책을 읽다보니 가정교사인 자신도 유령이 아닐까, 아니면 가정교사만 제외하고 두 아이들을 포함한 시골 저택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유령이 아닐까, 라는 별의별 생각과 추측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에는 어떠한 결론도 암시도 주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맥빠진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작가의 생각을 아무렇게나 휘갈겨 놓은 것이 아니냐, 라고 반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열려 있는 형식의 글쓰기가 주는 재미가 남달랐다. 읽는 이의 생각에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읽혀질 수 있는 책이었다.

 

책의 기본 스토리는 아주 간단하다. 젊은 여성이 부모를 잃은 채 살아가는 어린 남매인 마일스와 플로라를 위한 가정교사로 영국의 시골 저택에 들어간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런데 그녀는 그 저택에서 전직 하인인 퀸트와 가정교사였던 제슬의 유령을 목격하는 이상한 일을 겪게 된다. 그때부터 그녀는 어린 남매들을 유령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이 글을 이끌고 나가는 가정교사의 눈에서 본다면 위 줄거리가 맞을 수 있다. 하지만 가정교사가 본 것이 유령이 아니라 단순히 가정교사 자신의 생각이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전적으로 가정교사의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되어지는 내용이지만,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가정교사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이 그녀의 내면에 작용해서 환영이라는 대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라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재미있는 이야기 구조다.

 

19세기에 이런 소설이 나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행동 및 심리에 대한 절묘한 분석과 탁월한 묘사는 읽는 내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였다. 수많은 캐릭터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극적인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며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가진 것도 아니다. 시골 저택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둘러싸고 등장인물의 심리를 따라 움직이는 이야기 구조는 상당한 흡입력을 가진다.

 

물론 소설 속에 등장하는 퀸터와 제슬이 어떠한 관계인지, 이들이 마일스와 플로라에게 어떤 악행을 가했는지, 그로스 부인은 어떤 인물인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아서 책을 읽는 동안에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부분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이 이 글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 가장 특이한 경험은 글 내용을 마치 한 편의 영화를 찍듯이 아니면 그림을 그리듯이 자꾸만 머리 속에서 연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독자들의 의식의 흐름을 미리 예상하고 이런 스타일의 글을 쓴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헨리제임스, 유령, 의식의흐름, 심리, 고딕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