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현재 대한민국의 수도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500년 동안에도 수도로서의 역할을 하며, 서울 곳곳에 조선시대의 많은 역사 유물과 자료를 남겨 두고 있다. 특히 광화문을 중심으로 산재해 있는 조선시대 궁궐, 즉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경희궁, 창경궁 등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창덕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일한 궁으로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창덕궁이 사계절을 거치면서 보여주는 경관은 감탄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빼어나다. 서울 도심지에서 우리의 옛 문화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후손들에게는 상당한 행운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궁궐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조선시대 궁궐이 가지고 있던 본연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 최근 잃어버린 궁궐의 원래 모습을 되찾기 위한 복원 작업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과연 어느 정도까지 복원 작업이 이루어질지 궁금하다. 그나마 궁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경우는 다행이다. 복원 작업을 통해 당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라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의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원래 궁이 있던 자리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표석만 있을 뿐이다.

 

세조의 잠저였던 영희전에는 서울중부경찰서, 인조와 효종의 잠저인 어의궁에는 롯데시네마 피카디리극장, 사도세자의 사당이었던 경모궁에는 서울대학의학박물관, 선조와 인빈 김씨의 소생 정원군이 살고 인빈 김씨의 사당이었던 저경궁에는 한국은행(화폐금융박물관),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사당인 선희궁에는 국립서울농맹학교, 순헌황귀비의 사당인 덕안궁에는 서울시의회와 코리아나호텔, 세종의 여덟째 아들 영응대군의 왕가이자 세종대왕이 눈을 감은 동별궁에는 풍문여자고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우리의 근현대사가 얼마나 많은 질곡을 거쳤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개인적으로 궁궐을 둘러 보는 것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궁궐을 찾는다. 처음 궁궐을 찾았을 때는 유명한 유적지라는 생각에 그냥 둘러 보고 나오는 정도였다. 하지만 궁궐에 대해 하나, 둘씩 알면서 둘러 볼 때는 그 감흥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시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공간에 현재의 나 자신이 같이 호흡하고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은 상당히 묘하다. 궁을 찾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궁궐에 관한 책들도 찾아 보게 되었다. 보통은 현존하는 궁을 중심으로 하는 책들이 많았는데, 이 책에서는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간 궁까지 이야기를 해주고 있어서, 이제까지 몰랐던 우리의 궁의 모습에 감탄과 함께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았다.

 

이 책은 서울시문화유산해설사로 활동하는 지은이가 달랑 지도 한 장을 들고 대부분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서울 시내에 있던 ‘왕가(王家)’를 구석구석 찾아다니면서, 철저한 답사와 수많은 자료를 찾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왕가의 역사와 사연을 샅샅이 조사한 결과물이다. 지은이의 남다른 열정과 애정이 없었다면 이 세상에 나올 수 없었던 책이다. 그래서인지 책 곳곳에는 지은이의 열정와 열정이 그대로 녹아 있는 듯 했다. 그냥 눈으로 보는 거랑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그 역사를 조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인데, 지은이는 방대한 자료와 고증을 통해 잊혀져 간 우리 궁과 왕가의 모습, 그리고 당시의 시대상을 잘 정리해 주고 있다.

 

왕가라는 소재를 통해 조선시대의 역사를 읽어가는 재미가 남다른 책이다. 조선시대 역사를 한 권의 책에다 옮겨 놓다보니 책의 실제 페이지 보다 읽어야 하고 이해해야 하는 실제적인 내용은 어마어마하다. 이제까지 읽어 보지 못했던 역사 속 왕가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익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재미가 있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