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TV에서 경주 양동마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과 사상, 생활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선비들이 충과 효, 청빈 등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였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 이면에 드리워진 서민들의 삶이나 여성의 삶에 대해서는 제대로 조명이 이루어지지 않아 다소 균형감이 떨어진 시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을 지켜오면서 예와 의리를 중요시하고, 나라에 충성하며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큰 덕목으로 여기는 그들의 삶은 지금 이 시기 우리 사회에서 한 번쯤은 환기해 볼 만한 내용들이었다.

 

우리는 TV드라마나 아니면 영화를 통해서 조선시대 선비 사회는 사화와 당쟁으로 얼룩진 것으로만 여긴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배신과 음모가 판을 치고, 권력을 쥐기 위해서는 심지어 상대방을 죽이기까지 하는 일을 서슴치 않는 인물들로 묘사되곤 한다. 이런 극단적인 모습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일단 선비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쳐진 채 형식과 예의에만 얽매인 극보수주의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선비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나 시각을 떠올리게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선비에서 한국의 리더십을 발견하려고 한다. 지금 현재 우리 사회는 리더십이 부재다. 사회 전체적으로 불신이 팽배하고 이기주의가 팽배해있다. 정도(正道)를 가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선비를 통해 우리 사회를 보려는 지은이의 생각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지 의문이다. 혹자는 시대를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니냐, 라고 반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를 정년 퇴임하고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던 서울대 국사학과 정옥자 명예교수는 오히려 선비 정신이야말로 우리가 계승해야 할 정신적 자산이고 다가오는 평화의 시대, 문화의 시대에 꼭 필요한 한국적 리더십이라 주장한다.

 

책은 총 3장으로 되어 있다. 1장 “화이부동을 꿈꾸며” 에서는 지은이의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있다. 2장 “참을 수 없는 역사의 가벼움”, 3장 ‘왜 지금 ‘정조학’인가?“ 에서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한 토대라는 점을 강조하고, 선비는 지식과 교양을 갖추고 이를 일상에서 실천한 사람들로서, 선비 정신은 오늘날 우리들이 계승해야 할 덕목이라고 주장한다. 지은이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연구하면서 느낀 점을 글로 옮겨 놓은 것이어서, 지은이의 개인적이고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지나간 역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 번쯤 생각해보게 하는 노학자의 오랜 성찰이 묻어나온다. 

시대는 변한다. 하지만 그 시대의 정치와 사회, 문화 등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의 본질적인 부분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고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미래를 짚어볼 수 있는 것이다. 역사가 없는 현재와 미래는 없다. 모든 과거가 부정될 수는 없는 것이다. 과거 속에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할 수 있어야 한다. 지은이는 자신이 오랜 동안 연구해 온 조선의 역사 속에서 선비 정신 중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 있다며, 이는 리더십이 부재한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에세이 형식으로 써내려간 것이어서 지은이의 주장이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리더십 부재의 사회에서 선비 정신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 남다른 점이 있다. 미국이 카우보이 정신을, 일본이 사무라이 정신을, 강조하고 있듯이 우리의 지나간 역사인 선비 정신에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시대 정신을 읽어보는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선비정신, 리더십,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