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특징을 나타내는 학명으로서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손을 쓰는 사람),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생각하는 사람),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를 사용하고 제작할 줄 아는 인간)등이 있다. 저마다 사람의 특성을 표현하는 말인데, 이 책의 제목인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모든 표현들이 인간이 가진 하나의 측면만을 들여다 본 점은 있지만, 위와 같은 특성들이 모여 인간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저마다 의미있는 표현들이다.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루덴스’는 모든 문화 현상의 기원을 ‘놀이’에 두고 인간의 놀이가 문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70여년 전인 1938년에 ‘중세의 가을’로 유명한 네덜란드 역사학자인 ‘요한 하위징아’가 자신의 책에서 설파한 이론으로,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고전으로 불리우며 애독되고 있는 책이다.

 

20세기 아날로그 시대를 벗어나서 21세기 디지털 시대로 접어든 현재 그 어떠한 표현보다도 우리 인간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아닌가 한다. 구글이나 마이크로 소프트 같은 대기업에서는 직원들이 놀면서 일하도록 공간을 배치하고 업무시간을 짜고 있다. 창의적인 생각은 갇혀지거나 구속된 상태에서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롭고 부담없이 즐기는 가운데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국내 기업에서도 위와 같은 기업문화를 받아들일 정도로 하나의 트렌드처럼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은이는 먼저 놀이는 문화적 현상이다라는 점을 밝힌 다음, 언어, 경기, 법률, 전쟁, 지식, 시, 신화, 철학, 예술 등에서 나타나는 놀이 형태에 대해서 설명하고, 놀이의 관점에서 로마 제국 시대, 중세 시대, 르네상스와 휴머니즘 시대 등을 거쳐 현대까지의 서양 문명을 놀이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특히 지은이는 언어가 가진 다양한 의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 속에서 놀이적 요소를 찾아낸다.

 

이처럼 지은이는 문화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민속학, 문화인류학, 역사학, 철학, 언어학, 법학, 예술 등 방대한 분야에서 많은 사례를 인용하고 있다. 지은이의 해박한 지식이 놀라울 정도다. 진중권이 쓴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도 이 책에 빚을 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오래된 글이어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내용이 어려워서라기 보다는 당시의 학문이나 역사적 상황을 지금 현재의 눈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었다. 무엇보다 지은이가 언어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책장이 잘 안넘어간다. 영역본에는 각장에 소제목이 없는데, 역자는 각장마다 소제목을 붙여 두어서 이 책을 좀 더 쉽게 접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은이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문화 자체가 놀이라면 아마 우리 생활이 지금보다는 덜 삭막하지 않았을까 한다. 일과 놀이가 분리되면서 놀이는 안좋은 것으로 여겨지고, 사람들은 기계처럼 일에만 매달리는 일이 발생했다. 경기, 법률, 정치, 예술, 철학 등에 영향을 미친 놀이 정신이 현대에 다시 되살아난다면 인류의 문화는 더 풍요롭고 빛나지 않을까. 인간이 가진 특성을 아주 잘 잡아낸 역작으로, 놀이와 일이 분리되었던 아날로그 시대보다, 일과 놀이가 혼재되는 디지철 시대에 더욱 각광을 받는 내용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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