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예술 영화를 한편 보게 되었다. 꼭 볼려고 해서 본 건 아닌데 그냥 어쩌다 보니, 말 그대로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게, 보고 난 후의 감상은 그 어떤 영화 보다도 좋았던 것 같다. 적어도 별 다섯개에서 여섯개 정도는 더 줄 수 있는 만족감이라고나 할까, 사실 내용 자체는 별로 였다. 예술 영화를 즐겨보지 않아서인지, 영화 내용 자체가 별로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만족을 느낀 부분은 그 영화의 분위기와 느낌이었는데, 그 영화의 분위기와 느낌이 얼마나 좋았는지 마음 깊숙한 곳까지 푸욱 와 닿아 지금까지 그 색이 바라지 않았을 정도니 말이다. 예술 영화의 강점, 어떤 알 수 없는 감성을 건드리는 그것.

이 책 [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 는 나에게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예술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어떤 알 수 없는 감성을 건드리는...  검정색이었다. 내가 전에 본 그 예술 영화는 바로 검정색이었다. 어슴푸레한 노을을 뒤로하며 연인이 사랑을 속삭여도, 낮 2시쯤 파란 하늘 아래 즐겁게 웃고 있어도, 나에게 느껴지는 어떤 색깔은 바로 검정색이었다. 그에 반해 이 책은 상아색이었다. 표지와 같은 색으로 다가왔는데, 뭔가 그런 색깔의 느낌이었다. 몸만 다 자란 청년들의 철 없는 사랑과 방황이 바로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뭔가 다 자라지 못하고 단지 넘치는 젊음의 힘으로만, 열정으로만 살아가는 그들. 그들은 정말 상아색이었다. 어느 인도쪽에 있을 인도 코끼리의 상아색 같은 느낌. 

사실 영화나 책을 색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조금 웃기고, 어처구니 없는 일 일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선에선, 내가 표현 할 수 있는 선에선, 이것이 최고의 방법이었다. 뭐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고 말이다. 이 책은 정말 말로만 들어서는 모를 책 인것 같다. 읽어야 안다. 정말 읽어야만 알 수 있다. 이 책의 최고 강점인 분위기와 느낌을 말이다. 그리고 영화화 됐다고 하는데, 그 영화도 굉장히 보고 싶다. 책의 느낌을 잘 살렸다면 분명히 내가 좋아하는 류의 그 어떤 감성을 건드릴 수 있는 영화가 됐을텐데 말이다. [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 오랜만에 찾아 온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책인 것 같다.